빈티지 감성을 추억하는 그대에게 일본 재즈를!

[arte] 이봉호의 원픽! 재즈 앨범

일본 재즈의 피아니즘을 세계로 알린
야마모토 츠요시 트리오(Yamamoto Tsuyoshi Trio)의
Tsuyoshi Yamamoto Trio (츠요시 야마모토 트리오)의 <Misty> LP / 사진출처. ⓒ YES24
Tsuyoshi Yamamoto Trio (츠요시 야마모토 트리오)의 <Misty> LP / 사진출처. ⓒ YES24
올해 3월, 다시 도쿄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일본으로 떠나는 이들의 여행 목적은 실로 다양하다. 와인 애호가에게는 한국보다 저렴한 와인을 마시거나 구하기 위해, 음식기행을 즐기려는 이에게는 일본의 수많은 전통 요리를 맛보기 위해, 애니메이션에 빠진 세대에게는 아키하바라 등의 지역에서 판매하는 관련 피규어 구입을 위해, 문화유산에 관심이 있는 여행객에게는 교토를 비롯한 일본의 명승지와 마주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여행의 이유는 모두 필자에게도 해당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음악이다. 일본은 빈티지 문화를 집요하게 고수하는 국가에 속한다. 출퇴근 시간에 마주치는 직장인의 복장은 상당수가 검정이나 청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를 착용하고 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일본 지하철에서는 종이책을 읽는 탑승객이 보인다. 대를 이어 노포를 운영하는 풍습 역시 일본에서 자주 체험할 수 있는 문화에 해당한다.

레트로가 옛날 것을 따라하고 흉내내어 새로운 것을 만드는 문화라면, 빈티지는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여 현재 더 큰 가치를 가지는 문화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레트로보다는 빈티지 문화에 더욱 근접한 나라가 일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 소니가 만든 워크맨이라던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의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은 J-POP 열풍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결국 일본은 전통문화에 기반한 진보를 시도하는 국가라는 재해석이 가능하다.

다시 여행의 이유로 돌아가 보자. 생각해보면 필자가 처음 일본 땅을 밟았던 1996년이나 지금이나 일본행의 가장 큰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변함없이 가장 중요한 여행의 지상과제는 일본 전역에 자리 잡은 레코드점을 방문하는 일이다. 일본의 레코드점은 도쿄라는 대도시에 가장 많이 포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도쿄, 오사카, 삿포로, 나고야, 후쿠오카, 오키나와 등을 떠올려 보면 인구에 정비례하는 레코드점이 포진한 도쿄가 최고의 음악 여행지임이 틀림없다.

그래서였을까. 지금까지 13회의 일본 여행 중 도쿄에 방문한 횟수가 벌써 7이라는 숫자를 기록했다. 도쿄에서 음악과 관련하여 자주 방문하는 도시는 신주쿠와 오차노미즈다. 일본을 대표하는 레코드 체인점인 디스크 유니온이 있기 때문이다. 디스크 유니온은 일본 전역에 자리 잡고 있다. 중고 음반 위주로 판매하는 디스크 유니온은 신주쿠, 시부야, 이케부쿠로, 기치죠지, 오차노미즈, 시모키타자와, 나카노, 타치가와, 마치다, 진보쵸 등에 고루 지점을 두고 있다.
디스크 유니온 / 사진출처. © diskunion company
디스크 유니온 / 사진출처. © diskunion company
도쿄 권역을 제외하면 요코하마, 치바, 나고야, 오사카, 카시와, 키타우라와, 오미야 디스크 유니온이 수집광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음반 판매점이라는 정체성을 벗어나 북 유니온, 오디오 유니온 등을 추가로 개설하여 음악 전반을 아우르는 체인점 시스템을 구축했다. 재즈를 사랑하는 여행자라면 우선으로 신주쿠, 오차노미즈, 기치조지, 요코하마 디스크 유니온 재즈점을 추천한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점포를 방문하기란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가 주목하는 음반 재발매 국가로도 유명하다. 희귀음반 목록에 오른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자체적으로 재발매하여 해당 음반을 처음 제작했던 국가의 여행객이 역으로 일본에서 자국 뮤지션의 음반을 구하는 일도 적지 않다. 필자 역시 일본에서 자체 발매한 영어권 출신 재즈 뮤지션의 앨범을 여럿 소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재능있는 자국 출신의 재즈맨을 소유하고 있을까. 답은 ‘그렇다’에 가깝다.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일본 재즈맨의 음반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밀려 들어온 미국 문화에 재즈라는 콘텐츠가 깊숙이 자리잡은 국가다. 여기에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일본의 경기 호황은 음악 분야에서도 일본 출신 뮤지션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사건이 이어졌다. 재즈 역시 마찬가지여서 미국의 일급 재즈맨들과 함께 음반을 제작하거나 일본에서 공연 음반을 발표하는 유명 재즈맨이 늘어만 갔다.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반세기 전부터 일어난 재즈 열풍이 부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3월 도쿄 여행에서도 변함없이 디스크 유니온에 방문했다. 일정을 고려해 신주쿠와 오차노미즈 디스크 유니온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구입한 16장의 음반 중 하나가 이번 칼럼에서 소개하는 야마모토 츠요시 트리오의 앨범인 'Misty'다. 이 앨범은 일본 재즈를 처음 접하려는 리스너에게 적합한 피아노, 베이스, 드럼 형태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1948년 일본 니카타현에서 태어난 야마모토 츠요시는 피아노와 드럼에 관심을 가지면서 성장했다.
야마모토 츠요시(Yamamoto Tsuyoshi)의 젊은 시절 / 사진출처. © Discogs®
Yamamoto Tsuyoshi Trio(야마모토 츠요시 트리오) / 사진출처. © Discogs®
니혼대학에 입학했던 그는 1974년 도쿄의 재즈 클럽 미스티의 하우스 피아니스트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연주자로서 야마모토 츠요시에게 1974년은 가장 뜨거운 해였다. Misty를 포함하여 무려 6장을 앨범을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2번째 앨범이자 한국의 재즈애호가에게도 사랑받는 Misty에는 1집에 참여했던 베이시스트 후쿠이 이사오, 드러머 오바라 테츠지로가 변함없이 참여했다. 이 앨범에는 야마모토 츠요시가 작곡한 ‘Blues’라는 트랙이 실려 있다.

그의 타건은 특히 고음부의 처리에서 잠재된 매력을 발산한다.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의 묵직한 타건과는 거리가 먼 섬세한 터치로 일본 재즈의 피아니즘을 세계로 알리는 데 공헌했던 앨범이 바로 Misty다. 여리지만 서두르지 않는 연주기법을 추구하는 야마모토 츠요시는 1970년대 말까지 전부 13장의 음반을, 2013년까지 20장이 넘는 앨범을 발표했던 재능있는 피아니스트다. 1976년에는 베이시스트 샘 존즈와 드러머 빌리 히긴스와 함께 트리오 앨범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확장했다.
Yamamoto Tsuyoshi Trio(야마모토 츠요시 트리오) / 사진출처. © Evolution Media
야마모토 츠요시(Yamamoto Tsuyoshi)가 라이브를 하는 모습 / 사진출처. © Jazz in Japan.
1970년대 후반부터 주요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그는 1년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디지 길레스피, 카르멘 맥레이, 엘빈 존스, 소니 스팃 등에 이르는 전설적인 재즈맨과 연주 활동을 펼쳤다. 올해 4월 말에는 부산 출신의 직장 후배와 함께 일본 히로시마에 방문할 계획이다. 필자의 구글지도에는 이미 히로시마에 위치한 2곳의 레코드점이 표시되어 있다. 그곳에서 어떤 재즈 앨범과 만날지는 알 수 없다. 그게 바로 일본 여행의 묘미이자 목적이니까.

이봉호 문화평론가

[TSUYOSHI YAMAMOTO TRIO - Misty (1974) FULL ALB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