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기후 위기... 종말론적 불의 시대가 시작됐다"

경북 안동시 남후농공단지 인근 야산에 남아있는 산불 피해 흔적. 한경DB
경북 안동시 남후농공단지 인근 야산에 남아있는 산불 피해 흔적. 한경DB
영남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약 열흘 만에 가까스로 진화됐다. 이번 산불로 30명이 숨졌고, 서울 면적의 80%에 이르는 4만8000여ha의 국토가 잿더미가 됐다. 올 초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될 산불이 발생했다. 한국, 미국 뿐 아니라 일본, 태국 등지에서도 대규모 산불이 잇따라 확산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불에 대한 경각심을 다룬 책 <파이어 웨더>가 국내에 번역 출간돼 주목을 받고 있다. 논픽션 작가 존 베일런트가 2016년 5월 캐나다 석유산업의 중심지이자 미국 최대 원유 공급업체가 있는 포트맥머리에서 일어난 화재를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하루 만에 10만여 명이 대피하고 100억달러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던 화재다.

저자는 이 화재를 추적하면서, 포트맥머리 화재가 개별 사건이 아니라 최근 전 세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대형 화재와 무관치 않다는 연결점을 발견한다. "지난 150년 동안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탄화수소 자원 개발, 그로 인해 열을 가두는 온실가스가 실시간으로 증가하고 날씨가 급변하는 현상 사이에서 발생한 맹렬한 시너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불이 세상에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불은 수십만 년 동안 인류 진화의 주된 동력이었다. 음식을 요리하고, 집을 따뜻하게 하며, 경제를 움직이는 기계에 동력을 공급할 수 있게 해줬다. 문화와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던 불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가 심화하면서 우리가 과거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파괴력이 분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온실가스 방출과 건조화 현상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임야 화재든 도시 화재든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기후 환경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는 요건이 충분해졌다. 화재에 최고치(한계)도 없어졌다. 대기 변화 때문이다. 석유시대가 열린 이래 이산화탄소 등 대기로 배출되는 물질은 증가세만 거듭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거나 방출한 물질은 모두 대기 안에 고스란히 쌓이고 있다. 대기의 이산화탄소는 열을 정체시킨다.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 대기에 정체되는 열이 많아진다. 열이 정체될수록 화재는 잦아지고, 불을 키우는 화재 적란운(더워진 공기가 상승해 만들어진 구름)은 더욱 많아진다.

포트맥머리 화재 역시 이상 기온 현상과 동시에 나타났다. 화재가 발생했을 시기의 이 지역 기온은 보통 섭씨 15도 안팎인데, 당시엔 최고 기온이 32도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연기와 바람을 억제하는 기온역전층이 걷히며 강풍이 불어닥쳤고, 이 바람은 화마를 더 키웠다. 화재 적란운이 도시를 뒤덮었다.

저자는 빈발하는 화재가 과거 지구에서 나타났던 대멸종 초기 단계와 닮아 있다는 가설까지 이어간다. 지구에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사실상 진행 중이란 설명이다. 특히 이 멸종을 야기하는 원인에 인간이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현대의 인류는 사상 최대의 연소 기관을 만든 존재이자 연소 기관 그 자체가 됐다"고 주장한다. 이런 인류를 '호모 플라그란스', 즉 '불태우는 사람'으로 명명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는 건 불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에너지와 창의력을 연소와 소비가 아닌 재생과 쇄신에 쏟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설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