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로 나선 제레미 아이언스… 영혼을 씻겨주는 프라도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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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굳세어라 예술영화국내에서 뒤늦게 개봉돼 아무도 안 보고 있는(것 같지만 극소수의 상영관에서 4월 3일 현재 3162명을 모으고 있는), 이탈리아 발레리아 파리시 감독의 다큐멘터리 <프라도 위대한 미술관>은 두 가지 컨셉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가 나레이터로 나서
드라마적인 서사로 극영화 보는 듯한 느낌
그림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대화를 시도한다
첫째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레이터로 제레미 아이언스를 캐스팅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불공평하게도 타고난 무엇이 있다. 아이언스는 타고난 귀족처럼 보이고, 타고난 지식인처럼 보이며, 타고난 목소리를 지녔고, 어쩔 수 없이 타고난 매력이 치명적인 배우이다. 수많은 중세 걸작을 설명하고, 화가들의 인생사 뒷얘기를 조곤조곤 해주며, 시대와 역사에 대한 통찰을 구술해 줄 수 있는 배우는 단언컨대 아이언스밖에 없다. 1948년생으로 78세이며 키는 187cm에 여전히 깡말랐지만 죽음을 향해 한발짝 한발짝 천천히 걷고 있는 그의 얼굴 주름은 프라도 미술관의 플랑드르 그림들과 역설적인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이 다큐는 파리시 감독이 반, 아이언스가 반을 이뤄낸 작품이다. 다큐에도 그래서 종종 스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 준다.

사우라는 자신이 본 로이허르 판 데르베이던의 작품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에 대해 얘기하면서 우측에 있는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인 듯이 보인다며, 그 여자는 마치 피나 바우쉬의 무용수처럼 몸을 비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 다큐는 그 인터뷰 장면과 겹치거나 바로 다음 컷으로 그렇게 뒤틀린 몸짓의 피나 바우쉬의 무용을 보여 준다. 마리아 사우라는 더 특이한 증언도 하는데 어린 시절의 자신이 처음으로 흑인을 본 곳이, 시인인 아빠 손을 잡고 다니던 프라도 미술관에서라는 것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동방박사들의 경배'에 그려진 동방박사가 흑인이다. 그녀는 미술관이 얼마나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구술한다. 그런 에피소드들이 이 다큐에는 아주 많이, 그리고 잘 진열돼 있다. 성찬이다. 그림과 이야기의 성찬. 다큐 <프라도 위대한 미술관>을 정의할 수 있는 말이다.

고야의 작품이 900점 이상 전시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전설적인 회화인 '검은 그림' 연작 시리즈를 원본으로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프라도 미술관이다. 그 그림들은 과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인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 등의 국내 번역판 표지로 사용돼 아는 사람들에겐 아주 익숙한 작품들이다. '옷을 벗은 마하'나 '아들을 먹어 치우는 사투르누스' 등 고야의 작품 전반이 다큐 속에 담겨 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의 우측 여자가 사실은 난장이라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설명은, 그림이라고 하는 것이 이미지를 넘어 그 시대의 무엇을 설명하고 있고 사람들과 늘 시공간을 뛰어넘는 대화를 시도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역설해 준다. 베니스의 티치아노, 플랑드르의 루벤스, 스페인의 벨라스케스가 왜 이 프라도에 모였는지, 예술이 한때 얼마나 脫민족주의적이었는지도 보여 준다. 지금 시대에 꽤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프라도 위대한 미술관>을 보고 있으면 생애 최후의 버킷 리스트로 이곳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큐 한 편이 고야에서 벨라스케스, 히로니에무스 보슈까지 섭렵하게 하고, 그렇게 머릿속 관광을 다니게도 한다. 영화 속에서 미술관 작품을 보는 일반 관객들의 표정이 꽤나 감동적이다.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깨달음을 얻은 표정들이다. 그 오묘한 표정들을 잊을 수 없다. 마리아 사우라는 또 말한다. “나는 프라도 미술관에 새로움을 얻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리스 말로 “Kalos Kai Agatos” 말이 있다. 아름다움과 진실은 하나라는 뜻이다. 이걸 이렇게 바꾸고 싶다. 예술과 진실은 하나이다. 예술영화와 진실은 하나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