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먼 나라 위해…"이 악물고 연습했다"

통영국제음악제
통영음악제 숨은 두 주역

프랑스 명지휘자 파비앵 가벨
"산·바다·도시 펼쳐진 풍경 환상적
임윤찬은 천재…테크닉 경이롭다"

페스티벌 간판 파블로 페란데스
전세계서 가장 주목받는 첼리스트
"상주 연주자 제안 받았을때 큰영광"
지난달 30일 경남 통영시에 있는 통영국제음악당의 입구. 임윤찬 리사이틀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주현 기자
지난달 30일 경남 통영시에 있는 통영국제음악당의 입구. 임윤찬 리사이틀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주현 기자
올해 통영국제음악제(TIMF)를 빛낸 주역은 국내 아티스트뿐만이 아니었다. 개막, 폐막 등 음악제의 주요 무대에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를 이끌며 ‘작은 감독’ 역할을 자처한 프랑스 명지휘자 파비앵 가벨(50),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함께 상주 연주자로 활동하며 페스티벌의 ‘간판 모델’ 역할을 톡톡히 해낸 스페인 첼리스트 파블로 페란데스(34)가 있었다. 그들을 직접 만났다.

TFO 지휘한 가벨 “통영의 열기…亞 최고 축제”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를 찾은 프랑스 지휘자 파비앵 가벨(왼쪽)과 스페인 첼리스트 파블로 페란데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를 찾은 프랑스 지휘자 파비앵 가벨(왼쪽)과 스페인 첼리스트 파블로 페란데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가벨은 2004년 도나텔라 플리크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퀘벡 심포니 음악감독(2012~2021) 등을 지낸 베테랑 지휘자다. 그는 오는 9월 오스트리아 빈 톤퀸스틀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취임을 앞두고 있다.

지난달 30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만난 그는 “내가 경험한 TIMF는 아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축제”라며 “무게감 있는 레퍼토리부터 까다로운 프로그램까지 모두 끌어안는 도전적 페스티벌이란 점이 특히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산과 바다,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통영 풍경을 마주했을 땐 너무나 환상적이었습니다. 콘서트홀 또한 최고의 음악당 중 하나였죠.”

이번 음악제에서 TFO를 이끈 그는 “프로젝트 악단에는 정식 오케스트라에선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열기와 열정이 존재한다”며 “그 에너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음악제의 아름다움은 한국, 스위스, 프랑스 등 언어가 통하지 않는 다양한 인종이 각각의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연주자들과 음악으로 긴밀하게 소통하고, 열광적인 청중의 반응을 느낄 수 있는 건 저에게도 큰 배움의 시간이었죠.”

그는 협연자로 만난 임윤찬을 “천재(prodigy)”라고 극찬했다. “임윤찬은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능이 뛰어난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겸손한 피아니스트입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만큼 경이로운 테크닉을 보여주는데, 다른 사람의 생각과 소리도 경청할 줄 알죠.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빈 톤퀸스틀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에 오르는 그는 “코른골트, 쳄린스키 등 19세기, 20세기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의 낯선 작품을 발굴하고 탐구하는 것이 음악감독으로서 목표”라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시대를 복원하고, 악단에 새로운 레퍼토리를 주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 악단과 통영을 다시 찾는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첼리스트 페란데스 “한 곡 위해 400시간 연습”

페란데스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첼리스트 중 한 사람이다. 2021년 소니 클래시컬에서 발표한 데뷔 앨범 ‘리플렉션스(Reflections)’로 오푸스 클래식상을 거머쥐었고, 이듬해부터 ‘바이올린 여제’로 불리는 안네 소피 무터와 음반 등을 내며 정상급 첼리스트 반열에 올랐다.

지난달 2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만난 그는 “해외에서도 음악제 명성을 익히 들어 상주 연주자를 제안받았을 때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다”며 “TIMF에서 요청한 앙리 뒤티외의 ‘아득히 먼 나라…’ 연주를 위해 400시간 이상 연습했다”고 했다.

“처음 연습해본 작품이었는데, 워낙 복잡한 요소가 많아 어려움을 겪었죠. 상주 연주자는 일회성으로 무대에 오르는 일반 출연진과 다르잖아요. 여러 무대에서 다양한 음악을 선보여야 하는 자리인 만큼 강한 책임감으로 임했습니다.”

그는 미국과 유럽에서 ‘차세대 요요마’로 불린다. 이에 대해 그는 “위대한 첼리스트와 비교해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특정한 수식어에 갇히고 싶지 않다”며 “테크닉과 음악성, 개성을 더욱 발전시켜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음악가로서 원동력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거창한 꿈을 바라보기보다 오늘의 연주에 만족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음악을 향한 끝없는 갈증만이 제 원동력이랄까요. 눈에 보이는 트로피와 무대가 성공의 지표가 될 수 없어서 더 어려운 여정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장 연습하는 순간이 행복하다면 음악가로서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 아닐까요(웃음).”

통영=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