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누란(累卵)의 위기 속에 맞는 탄핵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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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상호관세 등 경제·안보 퍼펙트스톰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최악의 무역침해국’으로 분류해 26%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5일부터 기본 관세 10%를 부과하고 9일부터 개별 관세 16%를 추가한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20개국 중 최고 관세율이다. 우리보다 대미 무역흑자가 큰 유럽연합(EU), 일본보다 높다.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당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 한 번 못 한 정상 외교 부재가 가져온 재앙 같은 결과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국민 모두 승복하고 위기 극복 나서야
트럼프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한 연설을 보면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뚜렷하다. 그는 “무역에 관해서는 적보다 우방이 더 나쁘다”며 한국의 수입차 규제와 쌀 관세를 ‘최악’의 무역장벽으로 지목했다.
FTA를 맺어 품목 대부분이 무관세인데도, 미국은 한국의 실질적인 대미 관세율이 50%라고 멋대로 주장했다. 작년 미국의 대(對)한국 상품 수입액(1320억달러)에서 무역적자(660억달러)가 차지하는 비중 50%를 그대로 갖다가 썼다는 분석이다. 그 절반 가량인 26% 관세만 매기니 “관대한 조치”라고 자평하는 게 지금의 안하무인 미국이다. 우리 생산 기지가 있는 나라들이 고율 관세를 맞은 것도 뼈아프다. 가전·스마트폰 생산 거점인 베트남(46%)과 인도(26%), 의류 공장 인도네시아(32%) 등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미국은 “당장은 새 관세 정착에 집중하겠다”며 즉각적 관세 협상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당분간 상호관세를 속절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복 방침을 밝힌 중국, EU 등처럼 강경 대응에 나서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국가 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 폭탄’이 엄포에 그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은 이제 사라졌다. 중국 다음으로 큰 교역국인 미국에서 우리 제품은 가격 경쟁력을 잃을 것으로 우려된다. 역대 최고인 지난해(557억달러)와 같은 대미 무역흑자는 이제 기대하기 힘들다.
미국이 스스로 주도해온 자유무역 기반의 국제 통상 질서를 붕괴시켰으니, 각국의 보호무역 장벽은 더 견고해질 가능성이 높다. 수출 중심 경제의 대한민국엔 미증유의 위기다. 이미 올 1분기 수출은 반도체와 자동차 부진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했다.
우리 경제는 백척간두에 섰다. 글로벌 기관들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대 초·중반으로 줄줄이 하향했다. JP모간은 1.2%에서 0.9%로 낮춰 ‘0%대’ 전망치까지 등장했다. 구직 등 경제활동을 아예 포기한 ‘쉬었음’ 청년층(15∼29세) 인구가 지난 2월 사상 첫 50만 명을 넘긴 것도 암울하다. 야당과 노동계는 이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등 규제 입법으로 기업까지 옥죄고 있다.
안보 상황도 불안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큰 핵 국가’로 지칭하고 “(김정은과)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를 배제한 채 북한과 핵 동결 내지 군축 수준의 ‘스몰딜’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은 육군·해군·공군·로켓군을 총동원한 대만 포위 훈련을 해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안보 자강(自强)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누란(累卵)의 위기 속에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할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오늘 오전 11시 내려진다. 지난해 12월 14일 탄핵소추 이후 약 4개월 만이다. 탄핵 찬성과 반대로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나라는 완전히 두 개로 쪼개졌다. 극단적인 반목과 갈등은 1945년 해방 직후 좌우 대립을 연상시킬 정도로 심각하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통합이다. 한마음이 돼도 이겨내기 힘든 ‘퍼펙트 스톰’이 우리 경제와 안보에 닥쳤다. 이 위기는 옷깃만 여미면 되는 미풍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태풍이다. 더 이상의 분열은 그동안 힘들게 버텨온 대한민국호를 완전히 침몰시킬 수도 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 모두 대승적으로 결과에 승복하고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