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법정 진술 없이 조서 증거 활용하려면 피해자 특신상태 입증돼야"

다른 증거 없으면 피해자 법정 출석해야
대법 "조서 없이는 증거 부족"
사진=연합뉴스
수사 과정에서 나온 피해자 진술을 법정에서 확인할 수 없다면 ‘특신상태(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가 인정돼야만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달 13일 특수절도 및 공동폭행 혐의로 기소된 우즈베키스탄 국적 유학생 A씨 사건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같은 국적 유학생 B씨가 1000만원을 빌리고 갚지 않자, 2022년 8월 30일 B씨의 집에서 피해자의 여권과 통장을 담보 명목으로 훔쳤다. 물건을 훔친 다음 날 A씨는 공범과 함께 피해자에게 돈을 요구하며 손으로 B씨의 목을 조르는 등의 폭행을 가해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의 쟁점은 피해자 진술조서의 증거능력 여부였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해자 진술조서는 당사자가 법정에서 직접 내용에 대해 진술할 수 없는 경우 특신상태에서 작성된 것임이 입증돼야만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던 피해자 B씨가 재판에 늦게 도착해 증인신문은 진행되지 못했다. B씨는 이후 기일에도 출석하지 않은 채 연락이 두절돼 결국 법정에서의 증인신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서와 진술조서 간 내용에 모순이나 특별히 의심할 만한 점이 없고, 피해자가 기일에 출석하지 못한 정황을 고려할 때 증인신문을 회피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A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1심의 판단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 B씨의 진술조서를 제외하면 A씨의 유죄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한데, 법정에 출석하지 않은 B씨의 진술조서가 특신상태에서 작성됐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취지다. 또 재판부는 “피고인은 수사 단계부터 피해자의 진술과 상반된 내용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공소사실을 적극적으로 다퉜지만,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확인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피해자가 의도적으로 증인신문을 회피했을 가능성도 있다”고도 밝혔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증거능력 등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황동진 기자 rad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