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본으로부터 해방"…트럼프 관세가 자초한 진짜 위기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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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상호관세 정책의 수위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34%)은 물론이고 미국 기업들이 공급망을 대거 보유한 베트남(46%)과 대만(32%), 미국의 전통 우방인 한국(25%), 일본(24%), 유럽연합(20%)도 예외없이 고율 관세 대상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로지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를 기준으로 산출한 상호관세율을 가리키며 "미국을 약탈하던 나라들에 우리는 그래도 관대하게 대한다"고 했습니다.
전후 글로벌 무역 구조를 뒤흔들 수 있는 이 관세 정책은 앞으로 어떤 폭풍을 몰고 올까요. 월스트리트에선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 즉 '스태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이젠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로까지 확산했습니다. 가장 교과서적인 답입니다. 하지만 핵심은 이게 아닐 수 있습니다. 트럼프 관세의 가장 큰 리스크는 관세로 인한 상품 무역의 변화가 아닌, 미국으로 유입되는 해외 자본의 둔화라는 의견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이 구조를 바꾸고자 한다면 해외 자본 유입도 둔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블리츠의 지적입니다.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에 투자하기 위해 요구하는 프리미엄, 즉 국채의 경우엔 금리가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입니다. 블리츠는 "국내총생산(GDP)의 7%에 육박하는 미국의 재정 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려면 해외 자본 유입이 필수인데, 관세로 인한 자금조달 리스크를 트럼프 정부가 간과하고 있다는 게 시장의 우려"라고 설명합니다.
블리츠는 관세 정책 영향으로 단기적으로 10년물 미국채 금리가 4% 밑으로 하락할 수 있지만, 3분기 미 재무부가 대규모 국채 발행을 재개하면 장기 금리가 다시 급격히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경기 침체 우려로 Fed가 금리를 인하할 경우 단기 금리는 상승이 억제되겠지만 장기 금리는 구조적으로 상승해 '베어 스티프닝'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주식 시장에는 가장 부정적인 금리 환경입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베센트 재무 장관은 그동안 공공연하게 "10년물 금리의 하락이 우리의 목표"라고 해왔습니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 입장에선 국채 금리를 낮추고 이자 비용을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대로면 관세 정책이 '금리 낮추기' 목표를 좌절시킬 수 있습니다. 관세를 통한 무역적자 축소 정책이 결국 장기 금리 상승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트럼프 정부는 정책 우선순위를 어떻게 조정하게 될까요?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