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본으로부터 해방"…트럼프 관세가 자초한 진짜 위기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사진=AP
시장에 공포의 그림자가 짙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해방의 날'이라며 전 세계를 겨냥한 관세 정책을 발표한 다음날 미국 주식 시장은 폭락했습니다. S&P500은 4.8% 하락해 5,400 밑으로 떨어졌고, 다우지수는 4%, 나스닥은 6% 급락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투매가 벌어졌던 2020년 이후 가장 큰 낙폭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상호관세 정책의 수위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34%)은 물론이고 미국 기업들이 공급망을 대거 보유한 베트남(46%)과 대만(32%), 미국의 전통 우방인 한국(25%), 일본(24%), 유럽연합(20%)도 예외없이 고율 관세 대상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로지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를 기준으로 산출한 상호관세율을 가리키며 "미국을 약탈하던 나라들에 우리는 그래도 관대하게 대한다"고 했습니다.

전후 글로벌 무역 구조를 뒤흔들 수 있는 이 관세 정책은 앞으로 어떤 폭풍을 몰고 올까요. 월스트리트에선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 즉 '스태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이젠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로까지 확산했습니다. 가장 교과서적인 답입니다. 하지만 핵심은 이게 아닐 수 있습니다. 트럼프 관세의 가장 큰 리스크는 관세로 인한 상품 무역의 변화가 아닌, 미국으로 유입되는 해외 자본의 둔화라는 의견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TS롬바르드의 스티븐 블리츠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관세가 실제로 부과되면 무역적자는 축소될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미국 국채 시장을 떠받쳐온 막대한 해외 자본 유입도 둔화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트럼프 정부가 주장하듯) 단순히 상대국이 미국 상품을 안 사주고 미국은 더 많이 사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강한 달러를 기반으로 해외 자본이 미국 국채와 주식 등 달러 자산에 계속 투자하도록 유도(자본수지 흑자)했고, 대신 값싼 수입품을 공급받아(무역수지 적자)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왔습니다. 무역적자 때문에 해외로 나간 달러가 결국 미국에 투자로 돌아왔기 때문에 미국 재무부와 Fed가 의도적으로 유지해온 것이 현재의 구조입니다.

트럼프 정부가 이 구조를 바꾸고자 한다면 해외 자본 유입도 둔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블리츠의 지적입니다.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에 투자하기 위해 요구하는 프리미엄, 즉 국채의 경우엔 금리가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입니다. 블리츠는 "국내총생산(GDP)의 7%에 육박하는 미국의 재정 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려면 해외 자본 유입이 필수인데, 관세로 인한 자금조달 리스크를 트럼프 정부가 간과하고 있다는 게 시장의 우려"라고 설명합니다.

블리츠는 관세 정책 영향으로 단기적으로 10년물 미국채 금리가 4% 밑으로 하락할 수 있지만, 3분기 미 재무부가 대규모 국채 발행을 재개하면 장기 금리가 다시 급격히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경기 침체 우려로 Fed가 금리를 인하할 경우 단기 금리는 상승이 억제되겠지만 장기 금리는 구조적으로 상승해 '베어 스티프닝'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주식 시장에는 가장 부정적인 금리 환경입니다.
2025년 1월 1일~3월 17일 간 미국에 대한 해외 투자자의 심리 악화. 자료=골드만삭스
요즘 월스트리트에선 우방과 적을 가리지 않는 트럼프 정부의 공격적인 관세 정책이 미국과 달러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세계 최대 채권 투자사로 손꼽히는 핌코의 아이바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금과 엔화가 안전자산으로서 달러보다 선호도가 더 높아지고 있으며, 달러에 대해 좀더 신중한 입장이 됐다"면서 "지금과 같은 수준의 적자가 계속되고 동맹국 및 글로벌 무역 파트너와의 마찰이 계속 증가한다면 미국 달러 예외주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화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핌코는 이미 작년 말 재정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미국 장기국채 매입을 꺼리고 있다고 했는데, 이번엔 발언 수위가 조금 더 높아졌습니다.
도이치뱅크도 "관세 관련 최근의 상황으로 통화 시장에서 자본 흐름 배분에 큰 변화가 일어날 리스크가 있다"면서 "이는 통화 시장의 무질서한 움직임을 유발하고 미국 달러에 대한 신뢰 위기를 촉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피델리티의 주리엔 티머 글로벌 매크로 총괄은 3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험 자산 회피가 강해질 때마다 달러는 강세를 보였는데, 오늘은 반대로 (증시 급락에도 불구하고) 달러가 하락했다"며 "솔직히 이 패턴은 세계가 (관세로 인한) '탈세계화'뿐만 아니라 '탈달러화'도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 같아 약간 두렵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탈달러화는 금에 굉장한 강세 신호"라고 덧붙였습니다. 정말로 달러 지위가 흔들린다면 달러 자산의 대표주자인 미국 국채 수요에도 좋을 수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베센트 재무 장관은 그동안 공공연하게 "10년물 금리의 하락이 우리의 목표"라고 해왔습니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 입장에선 국채 금리를 낮추고 이자 비용을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대로면 관세 정책이 '금리 낮추기' 목표를 좌절시킬 수 있습니다. 관세를 통한 무역적자 축소 정책이 결국 장기 금리 상승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트럼프 정부는 정책 우선순위를 어떻게 조정하게 될까요?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