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中 신용등급 18년만에 강등…재정 악화에 트럼프 관세 덮쳐

A+→A 하향 조정
中 재정건전성 신뢰 흔들려

올 재정적자, GDP의 8.4% 전망
A등급 국가 평균보다 3배 높아
토지 매각 등 세입 감소 영향
中 정부는 "결정 인정 못해"

美 상호관세 뒤 불확실성 더 커져
피치 "경제성장률 4%대 그칠 것
재정개혁 없인 건전성 회복 불가"
外人 대상 국채발행도 차질 예상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중국의 국가신용등급을 18년 만에 하향 조정했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소비 부진과 부동산 시장 침체에서 탈출하기 위해 재정 지출을 급격히 늘리는 가운데 중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고율 관세를 부과해 중국 경제가 부진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신용등급 강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피치는 4일 중국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A’로 하향 조정했다. 피치는 2005년 중국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로 올린 데 이어 2007년 ‘A+’로 다시 상향 조정했다. 이후 18년가량 같은 등급을 유지했는데 이번에 신용등급을 내린 것이다. 피치는 지난해 8월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는데 그로부터 1년도 안 돼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A등급에 해당하는 국가는 일본, 아이슬란드,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등이며 한국은 이보다 높은 AA-등급이다.

피치가 이번에 등급을 조정한 주요인으로 중국의 재정 건전성 악화, 급증하는 공공부채가 지목된다.

중국 정부는 올해 재정적자 목표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4%로 설정했다. 중국은 통상 GDP 대비 3% 이내에서 재정적자를 관리해왔는데, 올해 5% 성장을 목표로 내걸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적자 비율을 4%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그런데 피치는 중국 재정적자율이 실제로는 GDP 대비 8.4%에 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수치는) A등급 국가의 평균 재정적자율인 GDP의 2.7%를 초과한다”며 “미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전부터 중국의 재정 전망은 이미 악화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재정 악화는 구조적 세입 감소와도 맞물려 있다. 지방정부의 토지 매각 수입이 줄고 감세 정책이 이어져 중국 재정수입은 2018년 GDP 대비 29%에서 2025년 21.3%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피치는 “구조적 요인으로 중국은 근본적 재정 개혁 없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도 신용등급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피치는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이 4.4%로 둔화하고 부동산 경기 침체와 소비심리 위축, 미국의 무역 압박 등 외부 변수로 정부의 재정 부양 의존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당국이 제시한 5% 성장 목표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 것이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등급 조정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발표한 상호관세 효과가 반영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 이후 중국에 20% 추가 관세를 부과한 상태다. 여기에 상호관세 34%까지 더하면 트럼프 2기 때 추가된 관세만 54%에 달한다. 지속적인 미국의 경제 압박으로 향후 성장 불확실성이 커진 점이 피치의 등급 조정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피치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는 중국의 성장과 재정 전망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등급 하향으로 중국이 추진 중인 외국인 투자자 대상 국채 발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커졌다. 실제로 중국 국채의 부도 위험을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이번 발표 직후 두 달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에서 처음 발행에 성공한 녹색국채도 신용등급 강등으로 향후 발행 비용이 높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중국 채권시장 투자자가 대부분 국내 금융회사와 연기금 중심이라는 점에서 단기적 자금 조달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중국 “편향적” 반발

중국 당국은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에 즉각 강하게 반발했다.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재정부는 피치의 등급 하향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편향적이고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등급 하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 당국은 중국 경제가 견고한 성장 기반과 구조적 이점을 바탕으로 강한 회복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중국 경제성장률은 5%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았다”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도 최근 중국의 2025년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4.6%, 4.5%로 상향 조정했다”고 강조했다. IMF는 올해 1월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업데이트에서 중국 정부가 작년 11월 내놓은 경기 부양책을 반영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0.1%포인트 높인 4.6%로 제시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5% 안팎으로 설정하고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역대 최고인 4%로 제시해 적극적 재정 정책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내수 부진과 가격 하락 등으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히 짙다. 물가 지표인 GDP 디플레이터는 2025년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소비자물가는 올해 말까지 0.9% 상승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