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 22분만에 "대통령을 파면한다"…환호 속 "역사의 죄인" 탄식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표정은

결정문 한 문장씩 끝날 때마다
尹변호인단, 얼굴 감싼채 한숨
국회 측은 내내 고개 끄덕여

재판관들, 선고 직전까지 평의
대통령·야당 측 잘못 고루 짚어
문형배, 김형두 등 두드리며 퇴정
< 문형배 입에 쏠린 눈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받아들여진 4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이 양쪽 대리인단과 취재진, 여야 의원, 일반 방청객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11시22분께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 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4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주문을 읽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청구한 국회 쪽 방청석에서 탄성과 함께 짧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 피청구인 쪽 좌석에서 “역사의 죄인이 된 거야”라는 말이 나오자 국회 측에선 “누가 역사의 죄인이냐”고 되받았다.

◇ 미소 띤 국회 측, 고개 못 든 尹측

이날 헌재 대심판정 가운데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측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추첨을 통해 선정한 일반 방청객을 제외하면 청구인 쪽 방청석은 야당 의원들이, 피청구인 쪽은 여당 의원들이 가득 메웠다. 선고 직후 국회 측 대리인단은 만면에 미소를 띠었고, 일부 야당 의원은 재판부를 향해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연신 외쳤다. 반면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침통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결정문 내용을 종이에 기록해가며 듣던 윤상현, 김기현 등 여당 의원은 선고가 끝난 직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양쪽 대리인단 가운데 가장 먼저 도착한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이날 가장 마지막까지 대심판정을 지킨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국회 측 대리인단은 ‘탄핵소추 인용’이라는 승소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려는 듯 대심판정을 떠나지 못한 채 눈을 맞추고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이들은 심판대(재판관들이 앉는 곳)를 배경으로 두 줄로 서서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측은 빠르게 대심판정을 빠져나갔다.

이번 사건의 승패는 선고 중후반부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최종 결정을 예상한 듯 윤 대통령 측 윤갑근·배보윤 변호사는 재판부 쪽을 거의 바라보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국회 측 김이수 변호사가 문장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윤 대통령 측 대리인들은 수차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윤 대통령의 ‘입’을 자처한 석동현 변호사는 선고 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 모두가 숨죽인 22분

집회·시위로 아침 일찍부터 소란하던 헌재 주변과 달리 대심판정 분위기는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심판정 내 118개 좌석은 선고를 한 시간가량 남겨둔 오전 10시께부터 취재진과 추첨을 통해 선정된 방청객, 여야 의원들로 붐볐다.

윤 대통령의 파면을 직접 선고한 문 대행은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입정해 선고 후에는 수고했다는 듯 김형두 재판관의 등을 두들기며 퇴정했다. 그는 평소보다 다소 높은 톤으로 천천히 결정문을 읽어 내려갔다. 선고 초반에는 대부분 정면과 결정문만 번갈아 봤지만 “국회 배제는 민주주의와 조화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 선고 말미 윤 대통령의 잘못을 짚는 부분에선 피청구인 쪽 좌석을 질타하듯 응시하기도 했다. “이례적 탄핵소추, 일방적 예산 삭감 시도” 등을 조목조목 짚으며 비상계엄 사태에 야당의 책임도 있다고 지적한 대목에선 반대로 청구인 쪽을 주시했다.

이날 재판관들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선고 1시간30분 전부터 마지막 평의(재판관 내부 회의)를 열고 결정문을 다듬었다. 변론 때마다 두꺼운 서류 뭉치와 함께 등장하던 김형두 재판관은 이날도 가방 네 개를 들고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는 윤 대통령의 파면 이유를 적시하면서 그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고 했다. ‘대한국민’은 우리 헌법 전문 첫머리에 등장하는 표현으로, 역사에 남을 결정문 문구 하나하나에 담긴 재판관들의 고심이 엿보인 대목이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