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충성 안 한다"던 강골검사…'두번째 파면 대통령'으로 퇴장

윤석열 대통령 '영욕의 1060일'

9수 끝에 고시 합격해 검사 임용
朴국정농단 수사 맡으며 스타덤
법무장관 조국·추미애와 대립
정치입문 8개월만에 '별의 순간'

집무실 용산 이전 등 파격행보
임기 내내 불통·金여사 구설수
여소야대 국면서 국정 동력 잃고
비상계엄 선포 122일만에 파면
2022년 3월 10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정치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정치 입문 8개월 된 신인이 단숨에 대권까지 거머쥐어서다. 공정과 상식을 앞세우며 ‘별의 순간’을 잡은 윤 대통령의 정치 여정은 찰나였다.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1060일 만에 대통령 임기를 마무리했다.
연합뉴스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 전 대통령은 헌정사 첫 검사 출신 대통령이다. 1994년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고, 검찰의 꽃인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지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9수(修)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검사가 된 이후에도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 대표적이다. 수사팀장을 맡은 윤 전 대통령은 국정감사에 나와 상부의 수사 개입 의혹을 폭로했다. 당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법무부 징계를 받고, 대구고검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윤 전 대통령에게 ‘강골 검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이때다.

윤 전 대통령은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특별검사 수사팀장을 맡아 화려하게 복귀했다. 당시 수사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한 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보수진영에서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윤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에 깜짝 발탁됐고, 2019년 7월에는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법조계에선 윤 전 대통령이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그는 취임 두 달 만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에 나서면서 정부와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까지 겨냥했다. 그러자 조 전 장관 후임자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고, 인사로 그의 참모들을 잘라냈다. 그럴수록 윤 전 대통령의 인기는 높아졌고, 결국 검찰을 떠난 지 3개월 만인 2021년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0.73%포인트 차로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윤 전 대통령은 임기 초 파격 행보를 보였다.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고, 매일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했다. 취임 열흘 만에 한·미 정상회담을 열며 한·미 동맹 강화에 공을 들였다. 6월 지방선거에선 광역단체장 17곳 중 13곳을 가져오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 등으로 취임 두 달 만인 7월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했다. 2022년 10월 이태원 사고, 2023년 7월 해병대원 순직 사고 등 사고도 연이어 터졌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구설도 이어졌다. 소통과 설득보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통치 스타일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4·10 총선 대패로 윤 전 대통령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여소야대 국면이 이어져 정부가 추진한 주요 정책은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했다. 의료개혁과 노동개혁, 교육개혁 등을 추진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마저 야당 및 여론의 반대에 막혔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같은 달 14일 탄핵소추됐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에 의해 체포됐고, 구속 취소 결정이 나면서 지난달 8일 석방됐다. 이후에는 한남동 관저에 칩거했고, 이날 헌재 판결로 파면됐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