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것 달라"는 트럼프…韓, 리더도 협상카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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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관세도 곧 시작"…고민 커진 통상당국
미국산 LNG·농산물 수입 확대
투자 패키지 등 제시하겠지만
협상 카드로 먹힐지는 불확실
'톱다운 외교' 당분간 불가능
관세 현실화땐 반도체 시장 위축
◇반도체 25% 관세 초읽기
반도체는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모든 회원국에 무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세계 최대 수요국인 미국이 관세를 매긴다면 메모리 반도체가 주력인 한국 기업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미국 내 반도체 가격이 오르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빅테크들이 투자를 줄여 시장이 다시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작년 한국의 수출 1위(1419억달러) 품목이다.
당장 미국으로의 수출에도 영향이 크다. 지난해 반도체 대미 수출액은 103억달러어치로 자동차(342억달러) 일반기계(149억달러)에 이은 3위였다. 흑자 규모는 72억달러를 기록했다. 양주영 산업연구원 경제안보·통상전략연구실장은 “한국 반도체 수출에서 미국 비중은 높지 않지만, 더 큰 관세 폭탄을 맞은 중국이 한국산 반도체 수입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도체 수요 품목인 전기, 전자, 가전 등 업종 전반에 끼치는 영향도 상당해 국내 전자 대기업의 고통은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조기 대선 이후에나 톱다운 외교 가능
통상당국은 눈앞으로 다가온 상호관세 폭탄을 줄이기 위해 미국에 어떤 카드를 던질지 고민이 크다. 당장 내세울 수 있는 카드는 무역수지 흑자 축소다. 최소 100억달러 이상의 에너지·농산물 수입 패키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참여 약속, 대기업의 추가 투자 약정 등이라는 해석이 나온다.정부 관계자는 “원유·가스 수입을 최대한 미국산으로 돌리는 방법을 고려할 만하다”고 했다. 중동, 캐나다 등지의 도입량을 조금씩 줄여 미국산으로 돌린다면 100억달러에서 최대 200억달러어치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하려는 줄이 길고, 생산량은 수요를 받쳐주지 못한다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원하는 건 장기적으로 중국과의 AI 패권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라며 “국내 반도체기업이 현지 생산을 늘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에 올라타 이익을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카드가 먹힐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정부가 최근 2년간 한국 기업의 미국 그린필드 투자가 1위였음을 꾸준히 강조하고 현대자동차그룹이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지만, 이에 대한 고려 없이 관세율이 매겨졌다는 점에서다. 막힌 혈을 뚫기 위한 톱다운 외교가 당분간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미국은 속전속결을 원하는데, 한국은 조기 대선이 치러질 6월 3일 이후에야 ‘정상 간 통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에너지 수입 확대와 대미 투자 모두 ‘기업 협조’를 전제로 하는데,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처럼 기업의 팔을 비틀기 어렵다는 점도 정부로선 고민이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대미 패키지도 중요하지만 국내 기업의 미국 사업에 대한 애로를 전달해 함께 타결하는 등 역발상 협상전략 또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대훈/김리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