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0%대 성장' 경고…美 경제계도 "상호관세는 큰 실수"

트럼프 관세發 퍼펙트스톰…스태그플레이션 먹구름

GDP 증가율 전망 일제히 낮춰
"내년까지 인플레·실업률 상승
올해 2분기 연속 역성장할 수도"

고율 관세 여파로 물가 급등 우려
인플레 전망 3년여 만에 '최고치'
현실화 땐 금리인하 더뎌질 수도
미국 상호관세가 기업 투자와 민간 소비를 위축시켜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관세가 소비자 물가에 전가돼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 관세 직격탄 맞은 애플·나이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월가 투자은행들은 상호관세 발표 다음날인 3일(현지시간) 앞다퉈 미국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조너선 핑글 UBS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26년까지 미국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상승할 것”이라며 “올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바클레이스도 올해 4분기 미국 경제가 전기 대비 -0.1% 역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노무라홀딩스는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이 0.6%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작년 말 예상치인 2.1%에서 크게 줄어든 수치다. 도이체방크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도 상호관세의 영향으로 미국 GDP 성장률이 1~1.5%포인트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BofA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미국 경제가 2.4% 성장한다고 예측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은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시기에 중대한 위험을 제시했다”고 경고했다.

시장에서는 상호관세가 사실상 ‘증세’로 작용해 기업 투자와 소비 심리를 위축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JP모간체이스는 이번 상호관세로 6600억달러(약 947조원) 규모의 증세 효과가 발생한다며 “1968년 이후 최대 규모 세금 인상”이라고 평가했다.

◇ IMF “세계 경제에 중대 위험”

그간 자유무역질서에 기반해 세계로 공급망을 확장해 온 미국 기업들이 이번 상호관세의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평가다.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미국 GDP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47년 3.1%에서 지난해 13.9%로 네 배 이상 확대됐다. 애플, 나이키 등 미국 대표 기업이 생산기지를 노동력이 저렴한 중국 베트남 등으로 이전하면서 수입 비중이 늘어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34%)과 베트남(46%)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애플과 나이키 주가는 이날 각각 9.25%, 14.44% 급락했다.

미 경제계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는 큰 실수”라는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혁신기업 투자자인 브래드 거스트너 알티미터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애플, BofA, 보잉, 페덱스 등이 소속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CEO 10여 명과 밤새 대화했다며 “경영자들은 이번 관세가 과도하며,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고율 관세 영향에 따른 물가 급등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관세 부과로 지난 2월 2.5%이던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전년 대비)이 연말 4.7%까지 오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연말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반영하는 1년 만기 인플레이션 스왑은 3년여 만에 최고치인 3.5%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전망이 현실화하면 미국 중앙은행(Fed)은 경기 둔화를 지켜보면서 고금리를 유지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리사 쿡 Fed 이사는 이날 “인플레이션 상승과 성장 둔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이런 시나리오는 통화정책 결정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는 앞서 Fed가 오는 6월 금리를 1회 인하한다는 전망을 철회하고 “인플레이션이 Fed를 관망(기준금리 유지)하게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물가 급등 우려에 미국인들은 사재기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국 소비자들이 슈퍼마켓과 전자제품 상점에서 운동복, 맥주, TV 등 각종 물건을 쓸어담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