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巨野에도 쓴소리…"이례적 줄탄핵, 헌정사 첫 예산 감액"

주문 발표 앞서 '정치권 협치' 강조

민주당에 '관용 부족' 지적
"尹·국회 대립, 일방의 책임 아냐
대화와 타협 통해 결론 냈어야"

"尹 국정마비 타개 의지는 존중
민주절차 내 국민 설득했어야"
< 문형배 입에 쏠린 눈 >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일인 4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이 양쪽 대리인단과 취재진, 여야 의원, 일반 방청객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11시22분께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문형배 입에 쏠린 눈 >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일인 4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이 양쪽 대리인단과 취재진, 여야 의원, 일반 방청객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11시22분께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회는 정부와 대화 및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헌법재판소는 4일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 국정 마비를 초래한 거대 야당에 대해서도 이처럼 따끔한 비판을 내놨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쓴 것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그 이전에 거대 야당의 횡포 역시 문제라고 질타한 셈이다.

헌재는 국회에 대해 ‘협치의 정신’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윤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될 정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결정문 요지에는 야당의 정치적 공세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을 짐작한 대목도 담겼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고 있다고 인식해 이를 타개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국회의 권한 행사를 권력 남용이나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로 판단한 점은 정치적으로 존중될 수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야당의 연속적 탄핵소추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증액 없이 감액만 야당 단독으로 의결한 사실에 대해 ‘이례적으로 많은’ ‘헌정사상 최초’ 등의 표현을 쓰며 사안의 중대성을 강조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취임한 이후 야당이 주도하고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소추로 인해 여러 고위공직자의 권한 행사가 탄핵심판 중 정지됐다”며 “수립한 주요 정책은 야당 반대로 시행될 수 없었고, 야당은 정부가 반대하는 법률안들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피청구인의 재의요구와 국회의 법률안 의결이 반복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비상계엄 선포 전까지 국회에서 발의된 탄핵소추안은 22건에 달했다. 673조3000억원 규모의 올해 예산안은 지난해 말 증액 없이 감액만 반영된 채 야당 주도로 처리됐다. 정부 예산안이 야당의 단독 수정만으로 본회의에서 통과된 초유의 사건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한 41개 법안 모두 여당과의 합의 없이 야당 일방 처리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정치적 교착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계엄을 선택한 사실은 ‘법치국가 원리와 민주국가 원리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이유로 국회의 권한 남용에 따른 위기 상황 타개를 들며 12·3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이 같은 목적으로는 계엄 선포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정치적 견해의 표명이나 공적 의사결정은 헌법상 보장되는 민주주의와 조화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헌재는 윤 대통령이 민주적 절차 안에서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지만 놓쳤다고 평가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취임한 때로부터 약 2년 후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피청구인이 국정을 주도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다”며 “그 결과가 피청구인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고 시도해선 안 됐다”고 비판했다.

황동진 기자 rad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