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보다 낫다"...미워하는 감정을 활용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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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못 생겼다" 비난 인정한 크록스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기업 13곳 성공 비결 분석
그러나 크록스는 '뭉툭한 앞코에 숭숭 난 구멍이 있는 못생긴 신발'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역으로 '추한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다. 미워하는 감정을 적절히 활용해 오히려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한 것이다. 지난해 크록스는 전년 대비 4% 증가한 41억달러(약 5조9500억원)의 매출을 거두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신간 <틀을 깨는 사람들>은 크록스를 포함해 스포티파이, 에어비앤비, 틱톡 등 파괴적 혁신을 달성한 13개 글로벌 기업의 성공 전략을 분석한 책이다. 미국 경영 전문 저널리스트 샐리 퍼시가 이들 기업의 창업 배경에서부터 성장 과정, 성공 요인 등을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그는 "혁신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마케팅, 영업, 제품 개발에서 기존의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려는 강한 의지"가 이들 기업을 게임 체인저로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책은 각 분야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은 기업의 과거부터 조명한다. 독립영화 배급사로 시작해 전 세계 수많은 팬을 거느린 미국 영화 제작사 'A24' 역시, 크록스처럼 흑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비평가들은 A24 영화를 두고 "너무 엉망이라 보는 사람들이 지친다"고 혹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굴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영화 '미드소마'에선 한여름 스웨덴 축제를 배경으로 밝은 낮에도 느낄 수 있는 공포감을 선사했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다중우주(멀티버스) 세계관이라는 창의적 연출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았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영화 제작자에게 창의성을 마음껏 펼칠 자유를 허용한 A24의 원칙이 자리한다. 전통적인 옥외광고판 대신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소셜 미디어로 입소문을 낸 것도 주효했다. 저자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A24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독특하고, 기발하고, 때로는 이상해 보이는 방식으로 '기존과 다른' 영화를 제작해 취향의 경계를 확장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혁신 기업이 공통적으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대표적으로 미국 대체육 기업 '비욘드미트'는 낙농장에서 자란 창업자 에단 브라운이 소고기를 대체하는 식물성 고기 가공업체를 꿈꾸며 시작됐다. 비건을 지향하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비욘드미트가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현재 비욘드미트는 미국을 넘어 80여개국에 제품을 공급하는 글로벌 대체육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자신들의 이념과 모순될 수 있는 브랜드와 협업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맥도날드, KFC 등 얼핏 보면 비욘드미트가 추구하는 이념과 상반되는 패스트푸드 브랜드와 손을 잡고 대체육에 관심이 없던 소비자들에게 기업을 알렸다.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 기업 '옥토퍼스에너지'도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던 설립자 그렉 잭슨의 굳은 신념에서 출발했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소비자 취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스포티파이'와 '틱톡'은 강력한 알고리즘을 토대로 가입자 수를 빠르게 늘려갔다. 우선 스포티파이는 광고를 낀 무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로 사용자 기반을 넓힌 뒤, 고도의 알고리즘을 통해 청취자 습관을 분석하고 맞춤형 음악을 추천했다. 내 취향에 딱 맞는 노래를 추천받은 무료 사용자들은 프리미엄 서비스에 속속 가입했다. 중국계 숏폼(짧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맞춤형 '포 유(For you)' 피드로 미국 정부도 두려움에 떨게 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게 됐다.
책에는 익히 알려진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영국 스포츠웨어업체 '짐샤크', 독일 밀키트 회사 '헬로우프레시' 등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빠르게 성장한 기업들의 이야기가 골고루 담겼다.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성장한 기업의 비결과 향후 전망도 균형 있게 살펴볼 수 있다.
허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