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韓, 尹계엄 이후 지난 4개월간 민주주의 원상 회복력 입증"

"韓 민주주의 고문·투옥·유혈 견디며 쟁취한 것"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시도에 대한 대응을 통해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전 세계에 입증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시간) 분석했다.

NYT는 이날 '한국 민주주의가 무모한 지도자를 이긴 방식'이라는 제목의 서울발 해설 기사에서 "지난 4개월간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 취약성과 동시에 강인한 복원력을 함께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NYT는 지난해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사건을 조명하며 "한때 아시아 민주화의 모범 사례로 불리던 한국에서조차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민주주의가 결코 완성된 체제가 아님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그러나 NYT는 이후 4개월간의 시간은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한지를 증명한 순간들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계엄령 선포 직후, 윤 전 대통령이 군부대를 국회에 투입해 입법부를 무력으로 장악하려 했지만, 시민들은 즉각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며 "맨손으로 군을 막아선 이들의 저항은 국회가 계엄 해제를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고, 결국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고 전했다.

NYT는 "한국인에게 민주주의는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고문과 투옥, 유혈을 견디며 수십 년간 거리에서 쟁취한 것"이라며 "독재 종식, 자유 선거, 권력 남용 지도자의 퇴진 등 모든 정치적 이정표는 시민의 실천으로 이뤄졌다"고 짚었다.

기사에는 윤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 행태도 언급됐다. 대통령 취임 직후 청와대를 떠나 외곽의 군 건물로 집무실을 옮긴 것, 비판 언론을 '가짜 뉴스'로 몰며 검찰 수사를 동원한 사례 등이 나열됐다. NYT는 이러한 권위주의가 정점에 달한 순간이 바로 계엄령 선포였다고 설명했다.

다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쿠데타 시도에 대한 시민사회의 즉각적이고 대규모적인 대응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특히 "1980년대 독재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이번 사태를 통해 처음으로 권위주의 회귀의 위험을 체감하고,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섰다"고 평가했다.

스나이더 교수는 또 "보수 성향 재판관들까지 포함해 헌법재판소가 전원일치로 탄핵을 인용한 것은, 사건의 명백함뿐 아니라 한국 사회가 이념적 분열을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이라고 덧붙였다.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역사학 교수도 "한국인은 1980년대 계엄령과 최루탄, 실종자들의 고통을 기억하며, 결코 그 시대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며 "윤 전 대통령과 참모진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서를 정확히 읽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NYT는 이번 사태가 외부 관찰자에게는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구축된 헌정 질서의 승리로 비칠 수 있다고 평가하며 "윤 전 대통령은 물러났지만, 그를 계엄령 선포로 몰고 간 정치적 분열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깊은 균열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