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꾼 전쟁의 룰…이젠 '특허'가 무기 [오성환의 지재권 분쟁, 이기는 쪽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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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애플…특허 전쟁 이미 시작돼
기술력 아닌 특허가 기업 가격 결정해
복잡한 AI 기술, 다층적 포트폴리오 필수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AI 특허 시장, 조용한 전쟁 중
실제 산업 현장에서 보면 이미 AI 특허는 '조용한 전쟁' 상태에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자율주행 기술 분야를 보자. 테슬라, 구글의 웨이모, 애플, 삼성 등 글로벌 기업들이 센서 융합 기술, 경로 예측 알고리즘, 비상 상황 대응 모델 등에 대한 특허를 선점하며 시장 진입 장벽을 치밀하게 쌓고 있다. 단순히 자율주행차를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판단을 내리고, 어떤 기준으로 제어하며, 어떤 조건에서 학습 데이터를 필터링하는지 등에 대한 것들은 특허로 보호받는 대상이 될 수 있다.전통적으로 발명된 기술과 달리 AI는 복합적이다. 하나의 기능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데이터 구조, 수학적 모델,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을 아우른다. 이에 출원 전략 역시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단일한 기술 요소만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결합돼 작동하는지, 그리고 어디에 응용될 수 있는지까지 고려해 다층적인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 기술의 깊이를 이해함과 동시에 그것이 법적 분쟁이나 계약 협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까지 내다볼 수 있는 통합적 시각이 필요한 이유다.
특허 대 특허의 싸움…전문가 협업이 기업 운명 좌우
AI 기술은 매우 유사하게 구현되는 경우가 많아 특허의 범위를 좁게 설정하면 회피 설계에 쉽게 무력화될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넓게 설정하면 거절될 위험이 커진다. 이 균형을 제대로 잡기 위해선 능숙하게 작성된 출원서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적 구현과 법률적 해석의 경계를 함께 아는 사람, 다시 말해 기술과 법의 언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지점이다. 마치 동시에 두 개의 렌즈로 세상을 보는 사람처럼 기술의 세밀함과 법의 논리를 함께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그럼에도 아직 많은 기업이 기술 개발에만 집중하고 지식재산 전략에는 비교적 무관심하다. 특히 초기 기업일수록 "특허는 나중에 해도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AI 기술은 누가 먼저 만들었느냐보다 누가 먼저 출원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선출원주의 원칙에 따라 같은 기술이라도 먼저 출원한 사람이 특허권을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이 완성되기 전이라도 핵심 개념을 정리하고 빠르게 출원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는 첫걸음이다.
AI는 기술 대 기술의 싸움이 아니다. 특허 대 특허의 싸움이다. 이젠 뛰어난 개발자뿐 아니라 그 기술이 어디까지 권리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전문가와의 협업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 변화의 파고는 기술의 높이가 아니라 권리의 넓이로 헤쳐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게임을 시작하는 건 기술을 개발한 자이지만, 그 결국 판을 지배하는 건 기술을 먼저 지식재산으로 만든 자다. 이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오성환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 ㅣ 1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2013~2017년 특허청 심사관으로 심사, 심판, 특허법 개정 등 업무를 수행했다. KAIST 공학 석사 과정을 밟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지식재산권법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9~2023년 법무법인 바른을 거쳐 2023년부터 동인에서 변리자이자 특허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지적재산권법 전문 변호사로 등록돼 있으며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대한변협 대의원이다. 성균관대 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