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아이들 꿈이 커가는 공간…사회적 투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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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

20년째 전국 도서관서 과학 강연
SK이노와 도서관 조성 사업도

"책에서 영감 받는 환경이 중요
더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 줘야"
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의 대전 죽동 자택은 3만 권이 넘는 책을 품고 있다. 그는 “책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그 기회를 더 많은 아이가 가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솔 기자
단독주택이 늘어선 대전 죽동의 한 고즈넉한 주택가. 나무로 만든 담장 안쪽 커다란 창 너머로 수백 권의 책이 층층이 쌓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묵직한 나무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중정과 작은 마당 등 책을 즐기기 위한 아늑한 공간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부엌과 거실, 화장실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집 전체가 책으로 가득 찬 이곳은 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가 3만 권이 넘는 책을 품기 위해 직접 설계한 공간이다. 과학자이자 저자, 유쾌한 강연자로 널리 알려진 그는 책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얻는다. 아이들 또한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꿈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 교수는 지난 4일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꿈을 꾸는 경험은 모든 아이에게 주어져야 한다”며 “형편이 어렵다고, 지방에 산다고 그들의 꿈까지 작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의 뇌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을 내리는지 이 과정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좋은 책 한 권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끼며 살아왔다. 처음엔 단순히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책을 모았는데, 책을 쌓고 모으고 다시 읽으며 책이 단순히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을 바꾸는 통로라는 점을 느꼈다.

과학자의 길을 걸은 것도 어렸을 적 우연히 읽은 책 한 권이 계기가 됐다. 정 교수는 “중학생 때 읽은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라는 책에서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가 산책하며 ‘열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2~3시간을 대화하는 내용을 보고 현대의 진정한 철학자는 과학자라는 생각에 물리학과에 진학했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 커서 다시 책을 읽어 보니 당시에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내 수준에서 나름대로 책을 읽어낸 것이었다”며 “주변의 책에서 영향을 받는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2006년부터 20년째 전국 도서관을 돌며 아이들에게 특강을 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 충남 서산 시립도서관에서 강연했는데, 좁은 도서관에 학생 300~400명이 모였다”며 “과학자를 처음 봤다며 몰려온 아이들에게 충격을 받아 이후로 지역 아이들을 직접 찾아가 강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는 SK이노베이션, 세이브더칠드런과 손잡고 지역에 도서관을 조성하는 ‘행복 Dream 도서관’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해부터 지역아동센터에 도서관을 만들고 맞춤형 도서를 지원하는 사업을 한다. 지난해 15개 센터, 445명을 대상으로 했고 올해는 25개 센터, 500명 아동으로 대상을 확대한다. 사업비는 SK이노베이션 계열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기본급의 1%를 모아 조성한 ‘1%행복나눔기금’을 이용한다. 정 교수는 방학 때마다 조성된 지역 도서관을 방문해 학생을 대상으로 강연한다.

그가 지향하는 도서관은 단순한 열람실을 넘어 소통하고 상호 작용하는 창의력의 공간이다. 정 교수는 “사회적 관심과 투자가 모여야 아이들이 영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했다. 이어 “책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그 기회를 더 많은 아이가 가질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