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발레 전성기 만든 최태지가 아직도 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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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인터뷰"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에 낙방한 11세 학생도 '발레드림' 공연에 나와요. 1등한 무용수만 무대에 오르는게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어요. 한국 발레계에서 무대는 정기공연 아니면 콩쿠르잖아요. 선택받은 소수만 올라갈 수 있다는 편견을 깨고 싶어요."
"아직도 발레로 할 일 무궁무진"
순수한 즐거움 찾는 무대 많아지길
26일 세종문화회관 '발레드림' 문연다
세계적인 발레 콩쿠르 시즌,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66)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발레 무용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국립발레단 재직 시절부터 정기공연 이외의 무대도 활발하게 기획하고, 무용수들에게 설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일까.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그를 지난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이번 무대에는 특별한 게스트도 함께 한다. 안무가 유회웅, 발레 의상 디자이너 정한아 등과 최 전 단장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됐다. "발레 용어만 설명하는게 아니라 발레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드리려고요. 백스테이지가 진짜 공연장이라고 생각해서 항상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최 전 단장은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다.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중 초대 국립발레단장 임성남을 만나 입단했다. 1985년 결혼과 함께 은퇴했으나 무대가 계속 그를 불렀다. 1993년까지 수석무용수로 활동했고 1996년, 최연소로 국립발레단장에 부임했다. 2008년 다시 국립발레단장이 돼 발레 대중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크고 작은 무대를 가리지 않고 경험을 쌓았던 단원들은 금세 주역 무용수로 성장했고 팬덤을 몰고 다니는 스타로 거듭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스타를 만들었다기보단 무용수에게 어울리는 레퍼토리와 캐릭터를 찾아주다보니 그렇게 됐다며 손사레를 쳤다.
"국립발레단장, 광주시립발레단장을 마친 이후 저는 이제 완전한 프리랜서 연출가예요. 그래서인지 발레 대중화에 대해 보다 자유로운 시선으로 구상하고 본격적으로 무대 콘셉트를 구상해요. 정말 재밌어요." 이번 공연 '발레드림'도 연장선상에 있다. 어찌보면 발레 대중화 2.0인 셈이다.
그의 말을 빌자면 무용수란 음악 속에 푹 빠져 다른 세상 속에 있는 듯한 느낌, 무용에 대한 몰입감을 좋아해서 저절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신체의 최전성기가 짧은 무용계에서 1등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건 이들이 맞딱 뜨리는 현실이다. "무대 위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찾기까지 너무 힘들어요. 발레학교가 없는 한국에서는 더욱이 입시를 위해 곁가지로 신경써야 할 것이 많지요. 발레라는 게 혼자 하는 예술이 아닌데 처음부터 친구를 경쟁자로 여기는 게 아쉽기도 하고요."
최 전 단장이 평생에 걸쳐 발레란 예술에 천착하게 된 계기도 음악과 춤이 주는 자유로움을 어렸을 때부터 경험해봐서다. "일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요, 가정마다 '개인 스튜디오'같은 게 있었어요. 누군가의 거실에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고 작은 발레 발표회를 열고, 어찌보면 살롱 문화의 일종이네요. 일상적으로 예술을 접하다보니 발레라는 걸 선택받은 소수만 즐긴다는 인식이 없었어요. 그런 즐거움을 한국에서도 느끼게 하고 싶다, 그 소망 하나로 지금까지 달렸어요."
이번 공연을 마무리하면 그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과 함께 올해 '대한민국 발레축제' 특별 공연(5월 28일)을 준비한다. 무용수로 뛰었던 시간도 비슷했고 양대 발레단을 이끌었던 리더였던 점도 닮았기에 공통점이 많은 동료다. 김주원 예술감독의 제안으로 이뤄진 이번 공연의 이름은 커넥션. 한국 발레의 르네상스기를 열어젖힌 이들이 손수 키워온 양 발레단의 무용수들(김리회, 이재우, 강미선, 이동탁)과 함께 다음 세대를 위한 애정 어린 마음으로 선보일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