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파면에 운용역 머리 맞댔다"…밸류업 펀드도 좌초? [돈앤톡]

尹 탄핵에 밸류업 펀드 위기 우려 확산

ETF 거래대금 지난해 말부터 급감 중
"명분 남아있어도 추진력 꺾일 수밖에"

밸류업 펀드 운용역들 "전략 재점검"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탄핵 심판 선고일 전후로 '밸류업'(Value Up·기업가치 제고) 펀드 운용역이 모여 회의를 여러 번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굴려야 할지 고민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기업가치 개선 종목 주가를 추종하는 밸류업 펀드의 표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힘을 줬던 '밸류업' 정책에서 파생된 관제펀드 격 투자상품들이어서다. 밸류업 ETF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한국 기업들에 집중 투자하는 상품이다. 정부 정책에 맞춘 상품이어서 여러 운용사가 같은날 동시 상장했다.

8일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4일 동시 상장한 밸류업 상장지수펀드(ETF) 9종(액티브 ETF 제외)의 거래대금은 지난해 말부터 급감세다. 거래대금 급감은 해당 종목에 유입된 돈의 규모가 감소했단 뜻이다.

일례로 밸류업 ETF 중 순자산총액 상위 2종인 'TIGER 코리아밸류업'(이하 TIGER)과 'KODEX 코리아밸류업'(이하 KODEX)의 월별 평균 거래대금을 집계하면 TIGER의 경우 지난해 11월 400억원에서 같은해 12월 88억원으로 고꾸라졌다. 올해 들어서도 1월 49억원에서 2월 21억원으로 반토막이 났고, 3월에는 다소 반등했지만 26억원에 그쳤다. KODEX 역시 유사한 흐름이다. 지난해 11월 176억원이던 월별 평균 거래대금은 같은해 12월 55억원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수직 낙하했다. 이어 올해 1월에는 29억원으로 줄었고, 2월과 3월에는 각각 7억원에 그쳤다.

증권·운용가는 탄핵 정국을 거치며 정권 차원의 정책 추진력이 꺾이자 관제펀드 성격이 짙은 밸류업 상품들도 타격을 입었다고 풀이했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기업가치 제고라는 초당적 명분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를 밀어붙일 동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국내 증시의 가치를 올리겠다며 '코리아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한 바 있다. 상장사들이 주주가치를 증대하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이도록 자발적인 계획을 끌어내는 게 골자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국무회의에서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기업 밸류업 정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줄어드는 관심과 달리 성적은 선방 중이다. 밸류업 ETF 9종의 연초 이후 수익률(지난 4일 기준)은 최저 2.74%, 최고 4.4%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2.75%다. 적어도 지수 오름폭 만큼은 주가가 오른 셈이다. 이들 ETF는 국내 증시 부진으로 약세를 보이다가 올 들어 지수 반등 속 덩달아 방향을 틀었다.

밸류업 펀드 운용역들은 지난 4일 탄핵 선고를 계기로 저마다 펀드 운용 전략 점검에 들어간 상태다.

한 운용사의 밸류업 ETF 책임운용역은 "당초 상품의 목적 자체가 기업가치 제고였던 만큼 당장은 기업들이 테마주처럼 피해를 받아 하락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정부에서 자금을 집행해 펀드에서 해당 기업들을 사기 때문에 수급적으로 주가에 긍정적 영향이 있는 것"이라며 "대통령 탄핵으로 자금 집행 명분과 동력이 사라진 셈이니 운용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일단 밸류업 지수 안에서 기존 지수 비중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대형주는 최상단에 두되, 남은 비중 안에서는 기업별 재료가 있는 종목들의 비중을 키우는 방식으로 대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운용사 밸류업 ETF 책임운용역은 "탄핵 심판 선고일을 앞두고 밸류업 펀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 증권사 애널리스트들과도, 자사 내부적으로도 여러차례 논의해 왔다"며 "논의 결과 정권색이 들어가 있는 '밸류업'이라는 이름은 바뀔지언정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구성종목으로 선별된 은행, 통신주가 실제로 기업가치 개선에 기여하는 곳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정책의 불확실성 우려를 일축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탄핵 당일과 지난 7일 두 차례에 걸쳐 자료를 배포하며 "(당국이) 기존에 발표했거나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당초 계획과 일정대로 추진해 시장 신뢰를 확고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