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폐허를 응시하라…리베카 솔닛의 충고

현장에서

오경묵 사회부 대구주재 부국장
미국 뉴올리언스를 덮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2001년 뉴욕 9·11 테러 등 세계적인 재난 속에서 인간의 대처 방식을 예리하게 분석한 미국 문화 비평가 리베카 솔닛의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최근 경북 북동부 산불에 맞닥뜨린 대한민국에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솔닛은 먼저 재난 상황에서 인간의 이타심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극한에 몰린 인간이 이기적, 야만적으로 변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점을 포착했다.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고 구조를 위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거나 전국 각지에서 달려와 무료 급식소를 꾸려 재건에 나선 경북의 현장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불길이 영덕 방파제까지 위협하는 와중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수십 명을 둘러업고 구해낸 인도네시아 선원 수기안토 씨가 그랬고 이웃을 구하려다 부모나 자신의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이들의 소식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솔닛은 개인이 아닌 시민으로서 품는 애정, 낯선 타인과 자기 고장에 대한 사랑, 집단에 소속돼 중요한 일을 하는 데 대한 보람을 ‘폐허에서 발견한 날카로운 기쁨’이라고 표현했다.

솔닛이 재난에서 발견한 또 다른 통찰은 ‘지금과 다른 유형의 사회를 만드는 능력’이다. 최근 대형 산불이 할퀴고 간 경북도 갈수록 대형화하는 재난에 대처하려면 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필요가 있다. 실제 이철우 경북지사는 이번 산불이 발생하기 이전인 2023년부터 ‘산림 대전환’을 꺼내 들었다. 경북은 산림 면적이 133만㏊로 강원도(136만㏊)에 못지않다. 그럼에도 산림에서 얻는 이익보다 재난 대응 비용과 부담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보기만 하는 산림’이 아니라 소멸 위기를 맞은 지방을 살리고 재난도 예방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정책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경북의 산하가 잿더미로 변하고 평생 가꿔온 삶의 터전을 잃은 현장을 마주하고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재난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경북에만 현재 1만1000여 개의 마을이 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재난은 늘 가장 약한 고리부터 노린다. 재난에도 강하고 미래지향적인 농어촌과 산촌을 만드는 것, 경북과 대한민국에 주어진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