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反트럼프 시위 구호 'Hands Off'

2011년 9월 월스트리트에서 30여 명이 모여 실업 사태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렇게 시작된 시위는 이후 73일간 계속되면서 세계 주요 도시와 한국 여의도까지 번졌다. 그들이 내건 구호가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와 ‘우리는 99%’다. 경제난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금융자본의 탐욕성을 고발하는 대명사가 됐다.

2015년 1월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리스트들이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실은 프랑스 파리의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에 침입해 총기 난사로 12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150만 명의 파리 시민이 참석한 추도식에는 저마다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주 슈이 샤를리)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이후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대변하는 구호가 됐다.

2020년 5월 미국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위조지폐 사용 혐의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했다. 백인 경찰관이 플로이드의 목을 9분 가까이 무릎으로 짓눌렀고, 플로이드는 20번 넘게 숨을 쉴 수 없다고 외쳤지만, 경찰관은 요지부동이었다. 동영상이 급속히 퍼지면서 미국 전역에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가 벌어졌다. BLM은 인종 차별 반대 캠페인의 상징어로 자리 잡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석 달도 안 돼 전국적 퇴진 운동에 직면했다. 지난 주말 미국 1300여 개 도시에서 150개 단체, 60만 명이 참가했다. 이들이 외친 구호는 ‘손을 떼라’(Hands Off). 사실상 탄핵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 세계를 향한 무차별 관세부터 반이민 정책, 공무원 대량 해고는 물론 우크라이나전에서 러시아를 옹호하는 것까지 트럼프 정책 전반을 성토했다. 트럼프의 최측근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 수장도 타깃이다.

시위가 벌어지는 순간 트럼프는 골프를 치고 있었고, 머스크는 이탈리아의 극우 정당 행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핸즈 오프’ 시위는 트럼프에게 막무가내식 일방주의를, 기업인 머스크에겐 정치와 일정 거리를 둘 것을 경고하고 있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