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정년 연장 반대…임금 깎고 퇴직 후 재고용해야" [강진규의 데이터너머]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장년층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장년층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사진=뉴스1
한국은행이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법정 정년 연장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임금 조정 없이 정년만 연장하면 청년들이 고용 시장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한은은 임금을 약 40% 삭감한 후 재고용하는 일본의 사례를 언급하며 '퇴직 후 재고용'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고령 근로자 8만명 늘자 청년 11만명 감소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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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한은은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오삼일 고용연구팀장·채민석 과장 등 한은 연구진이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함께 쓴 이번 보고서에서 연구진들은 지난 2016년 법적 정년을 만 60세로 연장한 이후 청년 고용이 급격하게 줄었다고 분석했다.

분석에 따르면 2016~2024년 중 정년 연장의 대상 연령인 만 55~59세 임금근로자가 약 8만명 증가하는 동안 만 23~27세 청년은 근로자 수가 11만명 줄었다. 고령층 근로자가 한명 늘어날 때 청년 근로자는 최대 1.5명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같은 대체효과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의 힘이 강력한 곳에서 더욱 컸다. 흔히 양질의 일자리로 여겨지는 대기업에 청년들이 진입하기 더 어려운 환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이같은 현상이 벌어진 이유로 고령 근로자의 임금이 조정되지 않은 점을 꼽았다.
2016년 정년연장으로 고령층 고용률은 높아졌지만 청년층은 하락했다. 자료=한국은행
2016년 정년연장으로 고령층 고용률은 높아졌지만 청년층은 하락했다. 자료=한국은행
오 팀장은 "임금체계 개편 없이 시행된 정년 연장은 고령층 고용은 늘렸으나, 청년층 고용에 양적·질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이는 2016년 이후 청년 취업률 감소, 혼인율 및 출산율 감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퇴직 후 재고용해야

한은은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계속근로제도를 참고해야 한다고 봤다. 일본은 1994년 60세 정년을 도입했고, 2013년 계속고용 제도를 의무화했다. 일본은 2013년 61세를 시작으로 3년마다 해당 연령을 1세씩 높여 2025년 65세까지 계속고용을 하고 있다.

일본의 계속고용제도에선 평균적으로 임금이 40% 가량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직무 조정이 이뤄지는 사례도 많았다. 대신 정부에서 임금이 25% 이상 감소한 고령자의 경우 고용보험을 통해 월급의 최대 15%를 최장 5년간 지급하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한 것이다.

한은은 지난 2016년의 정년 연장 사례, 일본의 계속고용제도 등을 종합해 "법정 정년연장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냈다. 특히 퇴직 후 재고용의 경우엔 청년층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 팀장은 "일본의 방식대로 퇴직 후 재고용을 한 경우엔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임금 삭감률을 40%로 일괄적으로 정할 수는 없지만 참고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또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고령층 근로의 방법으로 선택하더라도 즉각적인 의무화는 부담이 클 수 있다고 봤다. 오 팀장은 "임금 조정에 대한 합의 없이 퇴직 후 재고용이 의무화된다면 임금체계를 조정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노사가 자율적으로 이를 도입한 후, 시간을 두고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봤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희망자 전원을 계속고용하는 기업에게 근로자 1인당 월 30만원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 한은은 보조금을 늘리고, 희망자 전원이 아니라 대부분을 계속고용하는 경우에도 보조금을 주는 식으로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은은 퇴직 후 재고용 방식으로 고령자의 고용을 늘리면 고령자 소득 보전과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근로자는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만 60~65세 구간의 소득 크레바스를 상당 부분 메우는 게 가능하다.

고령화 등으로 2034년 경제성장률은 2024년 대비 약 3.3%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은퇴 연령대 근로자 70%를 재고용할 경우엔 하락폭이 1.9% 수준으로 축소될 것으로 분석됐다.

○민노총 "퇴직 후 재고용 절대 안돼"

문제는 고령자 고용을 둘러싼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경영계에선 계속고용 방식이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근로자들도 더 일할 수 있게 만드는 '윈-윈'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노동계에선 법정 정년을 만 65세로 연장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최근 법정 정년연장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계속고용 추진에 대해선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근로 조건이 악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정년연장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해 정년 연장 논의를 시작했다. 하반기 법정 정년을 만 65세로 높이는 것을 기본으로 사회적 논의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오삼일 한은 팀장은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체계와 고용경직성이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정년연장을 한다면 청년고용 위축 등 부작용이 반복될 것"이라며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와 근로관계를 종료한 후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는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의 장점이 크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