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에너지 옹달샘'…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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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개 넘은 카페…연매출 15조원 달해커피의 기원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건 15세기 예멘의 이슬람 수도자들이 경전을 읽을 때 각성을 위해 마셨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커피는 신비로운 수행의 음료였다. 커피의 각성 효과는 일찍이 알려졌고, 이후 유럽과의 접촉 과정에서 기독교 성직자들 역시 이 음료를 받아들였다. 17세기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해상 무역이 활발해지며 커피는 유럽 상류층과 지식인 사회로 퍼져나갔다. 오늘날 커피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특히 직장인에게 커피는 기호를 넘어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연료’와도 같다. 지금도 커피 시장은 빠르게 성장 중이다. 한국에서는 저가 커피 브랜드가 전성기를 누리는 한편 커피를 즐기는 방식 역시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커피 1인당 年 400잔…프랑스 이어 2위
메가·컴포즈 등 5대 저가 커피시장 급성장
카페인 함량 2㎎ 이하 디카페인 급성장
아메리카노 판매 비중의 10%가 디카페인
카페인 제거 기술 발달로 수요 계속 증가
고물가 시대 맞아 '홈카페' 시장도 성장
캡슐커피 시장 규모 4년새 2배 가량 늘어
제로 슈거 등 믹스 커피 성장세도 가팔라
◇ 카페 10만 개 시대

저가 커피 시장도 급성장세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5대 저가 커피 브랜드(메가·컴포즈·빽다방·더벤티·매머드)의 매장은 올 들어 총 1만 개를 넘어섰다. 2020년 3000개 미만이던 매장이 5년도 되지 않아 세 배 넘게 늘었다.
커피 시장이 급격히 성장한 배경에는 한국인이 커피를 대하는 태도가 있다. 한국인은 다른 나라 커피 소비 행태와 달리 커피를 ‘에너지원’으로 여기는 일이 많다. 커피는 본래 여유롭게 즐기는 음료라는 게 전통적인 유럽의 인식이다. 한국인처럼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것은 미국의 바쁜 도시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 과거 커피를 마시던 성직자처럼 ‘각성 음료’로서 커피를 마시는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또 카페 자체의 공간적 특성이 있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심에서 카페는 개인이 잠시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개인 공간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는 커피를 마시는 카페가 군중 속 개인 공간으로 여겨졌단 얘기다.
◇ 커지는 디카페인 시장

디카페인커피 시장이 국내에서 급성장하는 배경도 이와 맞닿아 있다.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 함량을 2㎎ 이하로 줄인 커피다. 카페인이 적기 때문에 각성 효과는 거의 없다. 오히려 커피 자체의 맛과 향을 즐기려는 이들이 찾는다. 아침에는 카페인 커피를 마셔서 각성 효과를 얻고, 오후에는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며 커피 자체를 즐긴단 얘기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디카페인 생두와 원두 수입량은 총 7023t으로 전년(6520t) 대비 7.7% 늘었다. 2019년엔 671t에 불과했다. 디카페인 커피는 커피 원두 내 카페인을 물에 녹이는 게 기본 원리다. 커피 브랜드마다 자체적인 기술을 통해 디카페인 커피를 개발하거나 해외에서 디카페인 원두 자체를 수입해온다. 스위스가 디카페인 기술에서 가장 앞섰다는 평가다.
◇ 캡슐커피·저당커피의 성장
홈카페는 캡슐커피를 빼놓을 수 없다. 2020년 2160억원 수준이던 국내 캡슐커피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4041억원으로 두 배가량 급성장했다. 현재 국내 캡슐커피 시장 1위는 네슬레코리아다. ‘네스카페 돌체구스토’와 ‘네스프레소’가 대표 브랜드다. 점유율이 57%에 달해 홈카페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7% 감소하며 주춤했다. 그 틈새를 2위인 동서식품이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캡슐커피 브랜드 ‘카누 바리스타’를 2023년 2월 처음 선보인 이후 공격적으로 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있다. 카누 바리스타는 기존 에스프레소 캡슐 대비 1.7배 많은 원두 9.5g 용량을 담은 것이 특징이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