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노장' 랑거의 '라스트 댄스'…"이제는 '놀라운 여정' 그만둘 때" [여기는 마스터스]

마스터스 2승 보유자 랑거
"올해 마지막으로 출전 안해"

1982년 이후 41번째 출전 '눈앞'
"코스는 길어지고 내 거리는 짧아져
아멘코너 13번홀 잊지못할 것"
베른하르트 랑거가 지난 7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에서 열린 마스터스 사전행사 드라이버 칩 앤 퍼트에서 참가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몇년 전 오거스타 내셔널GC 관계자에게 '이전 챔피언이 마스터스 출전 자격에 나이제한이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라는 답을 들었는데, 정말 그렇더군요. 이제 '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백전노장' 베른하르트 랑거(68·독일)가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라스트 댄스'를 치른다. 랑거는 8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 마스터스 개막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올해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마스터스에 출전하지 않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3승, 유러피언투어 42승을 보유한 랑거는 두번의 메이저 우승을 모두 마스터스에서 거뒀다. 1982년 처음으로 오거스타 내셔널GC에 입성한 그는 1985년과 1993년 두차례 그린재킷의 주인이 됐다. 지금은 시니어 무대인 챔피언스 투어에서 압도적인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오는 10일 막을 올리는 제89회 마스터스는 그에게 41번째 출전이자, 마지막 대회가 된다. 그는 "이 코스는 나날이 길어지고 있고, 내 비거리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며 "어제 연습라운드를 했는데 전장 7510야드의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경쟁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다른 선수들이 8·9번 아이언을 잡을 때 자신은 3번 우드로 그린을 공략하는데, 이 코스는 그렇게 치는 곳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1993년 마스터스 토너먼트 우승 당시의 베른하르트 랑거. /AP연합뉴스
당초 랑거는 지난해 대회에서 마스터스 은퇴를 선언하려 했다. 하지만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출전 자체가 무산됐다. 그는 "올해 오거스타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은 재활을 더욱 열심히 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어주었다"고 말했다.

그의 주무대가 된 챔피언스 투어에서는 선수들이 카트를 타고 이동한다. 하지만 전날 연습라운드에서 18홀을 모두 돌아서 걷고 나서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고 털어놨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미국에서 보기 드물게 경사가 심한 코스로 꼽힌다. 랑거는 "이런 코스에서 5~6일 연속 걸어서 플레이를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덧붙였다.

오거스타내셔널에서 랑거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11·12·13번홀을 아우르는 '아멘코너'다. 특히 13번홀은 그가 우승했던 대회마다 이글을 선물하며 우승의 동력이 되어준 홀이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묻자 그는 "갈수록 골프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성장하고 있다. 최고의 자리를 원한다면 절제된 삶을 살면서 무언가 포기할 각오도 해야하고, 완벽하게 헌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거스타 내셔널 측은 이날 랑거의 커리어 하이라이트 영상을 선물하며 백전노장의 라스트 댄스를 응원했다. 그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지켜봤다. "500명이 사는 독일 안하우젠에서 여기까지 온 것은 놀라운 여정이었습니다. 평소 필드에 올라가면 저는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는데 이번주에는 로프밖에서 저를 응원해주는 가족, 친구, 관중들을 보며 복잡한 감정이 들 것 같군요."

오거스타=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