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원하는 알짜부터 내놓자"…SK, 두번의 빅딜로 6조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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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위 반도체 웨이퍼社▶마켓인사이트 4월 8일 오후 4시 50분
실트론 인수 8년 만에 매각
스페셜티 이어 실트론까지…
재무구조 재정비 시급한 SK
가치 5배 이상 뛴 계열사 내놔
딜 성사 땐 순차입금 5조 아래로
'부채율 100% 이하' 계획 청신호
SK그룹이 최대 알짜 계열사인 SK실트론 매각에 성공하면 그룹 리밸런싱(사업 재편)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SK스페셜티에 이어 알짜 계열사를 줄줄이 내놓으면서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극대화한 상황에서 미래 성장에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계에 몰린 계열사가 아니라 시장에서 각광받는 매물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매각으로 재무구조를 재정비한 SK그룹은 인공지능(AI)과 에너지 플랫폼 등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앤컴퍼니와 협상 급물살
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는 지난해 11월부터 극소수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대상으로 SK실트론 경영권 매각을 타진했다. 이 중 SK로부터 반도체 특수가스 제조사 SK스페셜티를 인수한 한앤컴퍼니가 가장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 구체적인 조건을 조율하고 있다. 매각 측이 전체 지분 가치(100%) 기준으로 6조원 이상을 고수하며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5조원대까지 눈높이를 낮춰 빠른 속도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2017년 LG그룹에서 경영권을 1조원 안팎에 인수한 것과 비교해 몸값이 다섯 배 이상 뛰었다.반도체용 실리콘 웨이퍼를 만드는 SK실트론은 반도체 경기에 따라 실적이 큰 폭으로 부침을 겪었지만 SK그룹 편입 후 SK하이닉스 등의 수혜를 누리며 환골탈태했다. 2017년 9331억원에 그친 이 회사 매출은 2022년 2조4000억원으로 연평균 24% 넘게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매출 2조1268억원,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6400억원가량을 올렸다. 일본 섬코, 신에쓰에 이어 점유율 3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SK실트론 매각으로 SK그룹의 반도체 수직계열화 전략은 폐기 수순을 밟는다. SK그룹은 2015년 SK머티리얼즈(당시 OCI머티리얼즈) 인수를 시작으로 다수의 인수합병(M&A)을 통해 지주회사 SK㈜ 산하에 반도체 소재·부품 계열사들을 내재화하는 전략을 폈다. SK하이닉스의 성장을 향유하고 이를 통해 지주사 기업가치를 키우겠다는 취지였다.
한때 그룹사 시가총액이 재계 2위에 오르는 등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이 과정에서 재무 부담이 커진 데다 반도체 업황에 그룹 실적이 휘둘리는 부작용이 생겼다. 결국 SK스페셜티는 매각하고, SK머티리얼즈 내 일부 사업부문은 SK에코플랜트로 이관하는 등 조정이 이뤄졌다.
◇리밸런싱 9부 능선 넘어
SK㈜를 짓눌러온 재무 부담은 대부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SK실트론 매각이 성사되면 SK㈜는 지난 2일 SK스페셜티를 매각해 손에 쥔 2조6300억원을 포함해 6조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한다.지난해 말 기준 10조5260억원에 달한 SK㈜ 순차입금도 5조원 미만으로 대폭 감소할 전망이다. SK㈜ 순차입금이 10조원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2017년 이후 8년여 만이다. 2023년 145% 수준이던 SK 부채 비율을 100% 이하로 줄이겠다는 계획에도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은 지난해 SK스퀘어의 크래프톤 지분 매각(2660억원)을 시작으로 SK네트웍스의 SK렌터카 지분 매각(8200억원) 등 일부 비주력 자산 매각, SK이노베이션과 SK E&S 간 합병 등 굵직한 절차를 마무리했다.
SK그룹은 SK에코플랜트 환경사업부 매각, SK아이이테크놀로지 매각, SK엔무브 상장(IPO) 등 추가적인 유동성 확보도 병행하고 있다. 재계에선 SK하이닉스와 SK온을 제외한 반도체·배터리 소재사 등 제조 분야 계열사들을 대폭 줄이고 AI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에 투자하는 등 그룹 차원의 재편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