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전기료발 산업 재편에 대비해야

정인설 중소기업부장
근래의 전기요금 인상은 한국만 겪은 게 아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어난 세계적 현상이다. 전기, 가스 할 것 없이 모든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에너지 안보’라는 말이 대세가 됐다.

공교롭게도 제조업 강국들은 탈원전이라는 우를 범해 위기를 키웠다.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이 원전에 등을 돌렸고, 독일과 대만 역시 원전과의 이별을 선언했다. 뜬금없이 한국도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 대열에 합류했다.

'설상가상'의 후폭풍

설상가상의 후폭풍은 산업용 전기요금 급등으로 이어졌다. 원전을 모두 폐쇄한 독일에서 특히 심했다. 2022년 산업용 전기요금이 갑절로 오르자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해 10월 세계 최대 화학 기업인 바스프의 마르틴 브루더뮐러 최고경영자(CEO)는 “(전기료 때문에) 독일에선 더 이상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고 탄식했다. 바스프는 전기료가 저렴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인 미국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등에 투자를 집중했다.

비슷한 시기 독일 최대 가전 회사인 밀레와 난방 시스템 업체인 비스만도 자국 사업을 줄이고 폴란드로 향했다. ‘전기료발 엑소더스’가 확산하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높은 에너지 비용으로 독일 제조업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전기료 불만은 대만에서도 들끓었다. 2022년 이후 매년 전기료가 10% 이상 상승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 또다시 12% 올랐다. 웬델 황 TSMC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수년간 대만 전기요금이 몇 배로 올라 우리가 진출한 국가 중 대만 전기료가 가장 비싸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한국도 산업용 전기료 폭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독일과 대만처럼 각종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해 주택용 전기료는 동결하거나 찔끔 올리고 만만한 산업용 요금만 집중 인상한 여파다.

뒷짐 진 한국 정부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컸다. 보수·진보 정부 가릴 것 없이 포퓰리즘 경쟁을 벌여 산업용 전기료는 2021년 말 ㎾h당 105.5원에서 지난해 말 185.5원으로 76% 급등했다. 이 기간 37% 인상된 주택용보다 두 배 더 올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산업용 전기료는 주택용보다 24%가량 비싸졌다. 산업용 전기료를 올려도 주택용보다는 싸게 유지한 독일,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독일과 일본 정부는 제조업 경쟁력을 고려해 지난해부터 전기료 부담이 급증한 기업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 반면 전기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배터리, 철강이 주력인 한국에선 한국전력 적자 탓에 보조금 지급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한국적 님비’ 현상으로 송전망을 제대로 깔지 못해 기업이 남아도는 주변 발전소 전기를 못 쓰는 건 일상적인 모습이 됐다.

벼랑 끝에 선 기업이 택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다. 해외로 나가거나 사업을 접는 것이다. 이런 절체절명 위기 속에서도 정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전기료발 산업 재편이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권력 공백기란 핑계로 뒷짐만 지고 있다. 포퓰리즘이 난무할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관세에 전기료 폭탄까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건 우리 기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