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칼럼] 수명 다해가는 '플랫폼 USA'

달러 특권국 美의 상호관세 반칙
中 견제 실패하고 스스로 괴물 돼

한·일·EU 우방 신뢰 경시하다간
달러 패권 붕괴로 치달을 것

한국, 세계 정세 불확실성
제대로 대처하는 정부 들어서야

백광엽 수석논설위원
“어쩌면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수교로 중국의 정상국가화를 도모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죽음을 앞둔 1994년 측근에게 던진 말이다. 불길한 예감은 늘 현실이 된다. 글로벌 경제체제로 편입시키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동화될 것이라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덩치를 키운 중국은 경제 스파이 행각, 글로벌 공급망 위협 등으로 세계의 골칫거리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극적 귀환도 ‘룰 파괴자’ 중국을 제어할 적임자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출범 두 달여 만에 세계는 미국마저 프랑켄슈타인을 닮아간다는 공포와 맞닥뜨렸다. 상호관세 폭주는 원조 괴물 중국도 울고 갈 폭압적 전개다. ‘괴물과 싸우다 스스로 괴물이 된다’더니 딱 그 짝이다.

트럼프 상호관세는 국제분업으로 작동하는 자유무역체제에 대한 무지이자 모독이다. 상대국의 관세·비관세 장벽에 대한 정밀 분석 없이 대미 무역흑자 규모만으로 세율을 매겼다. ‘단골 식료품점이 늘 내 돈을 가져가니 세금 부과로 균형을 맞추겠다는 억지’(펠릭스 틴텔노트 듀크대 교수)에 불과하다.

한·미 FTA로 대미 관세율은 사실상 0%다. 그럼에도 미국은 25% 상호관세를 매겼다. 아무 근거 없이 ‘50%’를 한국의 대미 관세율로 제시한 뒤 그 절반을 때렸다. 그러고선 ‘미국은 관대하다’고 생색냈다. ‘70년 혈맹’을 들먹이고 싶지도 않다. 한국은 작년, 재작년 2년 연속 미국의 최대 그린필드(생산시설·법인 설립) 투자국이다. 이쯤 되면 최소한의 상도의마저 실종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이처럼 부적절한 관세를 맞았다.

대혼란 수습 방법이 아직 남아 있긴 하다. 후속 협상을 통해 우방을 배려하고, 보복관세 부과를 빌미로 중국에 대한 ‘핀셋 관세’를 정당화하면 된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광인 전략’의 긍정적 결말이 가능하지만 기대난이다. 상호관세의 출발점인 감당 못할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해소 방법이 없어서다. 미 국민과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유일 해법이지만 실현 불가능의 영역이다.

상호관세발 쓰나미를 어찌어찌 수습해도 미국은 신뢰 추락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직면해야 한다. 트럼프는 수십·수백조원 투자하는 현대자동차와 TSMC를 백악관으로 불러 ‘위대한 기업’이라 극찬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관세 발표 땐 한국과 대만을 더 혹독하게 다뤄 배신감을 안겼다. 총리가 직접 아부한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즈음 미국의 ‘매너’는 봉인 해제라도 된 듯하다. 대통령은 “유럽연합(EU)이 우리를 강간·약탈 중”이며 “친구인 한국과 일본은 적국보다 더하다”고 매도했다. 재무장관은 “보복할 생각일랑 접어라”며 대놓고 협박이다. 그린란드 관련 주권침탈적 언행에 대한 덴마크 외무장관 직격이 세계인의 심정일 것이다. “솔직히 말투부터 맘에 들지 않는다.”

세상은 거대한 ‘플랫폼 USA’다. 미 증시가 세계 시가총액의 절반이다. 자동차 집 스마트폰 인터넷 등 일상 속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중 미제 또는 미국 기술 아닌 것이 드물다. 플랫폼 USA의 승승장구 비결이 자유무역이다. 미국은 1944년 44개 동맹국을 브레턴우즈로 불러 모아 새 국제질서를 설계했다. 패전국을 식민지로 삼거나 천문학적 배상금으로 곳간을 채우는 게 당시 관행이었다. 미국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해상무역로의 철저한 보호, 미국 시장에 대한 무제한 접근을 약속했다. 전후 80년의 번영이 이 놀라운 결단의 결과다.

대신 미국은 세계통화 창설 제안을 물리고 달러 기축 시스템을 관철했다. 단순화하면 돈을 찍어내는 유일국 지위와 자유무역의 맞교환이다. ‘미국 예외주의’로 해설하는 나 홀로 성장, 증시 초과 상승도 ‘달러 인쇄기’ 보유 덕분이다.

이런 특권을 누리는 마당에 관세라는 명목의 ‘플랫폼 입점료’까지 물리니 세계 경제의 발작은 필연이다. 트럼프는 “결과는 역사적일 것”이라고 자신한다. 단기 성공은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플랫폼 USA’가 삥 뜯는 ‘하우스 USA’로 변질된다면 지속 불가능하다.

초강대국 미국 걱정은 연예인 걱정처럼 부질없다. 문제는 한국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마당에 하나도 벅찬 자유무역의 거대한 적을 둘이나 상대해야 한다. 이 결정적 시기, 국내에서만큼은 괴물 정권이 들어서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