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원 드론이 수억짜리 유도미사일 변신…'국방 테크' 큰장 섰다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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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달려가는 스타트업#.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기업 코난테크놀로지는 최근 국방AI 사업부를 신설했다. 전술·전략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지휘·통제를 지원하는 AI 시스템을 군에 공급하는 게 목표다. 예컨대 직접 개발한 ‘코난 LLM’을 활용해 지휘관이 전투를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니어스랩·파블로항공 방산 진출
AI 스타트업도 전쟁용 무기 개발
전장인식 기술 선진국 대비 78%
방산 대기업, AI 스타트업에 투자
美-中 방산테크 경쟁 심화
"큰 틀의 국방 정책 로드맵 필요"
#. 드론 군집제어 스타트업 파블로항공은 공격용 드론 ‘파블로M S10s’를 공개했다. 이 회사는 드론쇼와 배송 드론 등을 개발해온 곳으로 국방용 드론을 선보인 건 처음이다. 파블로항공 관계자는 “미래 방위산업 시장에서 경쟁할 것”이라고 했다.

◇방산 향하는 K스타트업
주요 AI·드론 스타트업이 방산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첨단 기술이 적용된 신형 무기와 전술 전략 체계가 전쟁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다. 우크라이나군이 많이 사용하는 1인칭 시점 드론(FPV) 단가는 400달러(약 58만원). 여기에 폭약을 싣고 AI 기술을 접목하면 수억원 수준의 고성능 유도 미사일로 변신한다. 사람이 정해준 목표물을 향해 드론이 알아서 날아가 타격한다. AI 기술이 전쟁에 적용된 대표 사례다.한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빠른 성장을 도모하는 스타트업에 국방 분야는 제품 검증과 판매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선호하지 않는 시장이었지만 최근 전쟁 양상이 첨단 기술전으로 변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며 “글로벌 방산테크 시장이 활짝 열리면서 스타트업들도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핵심 영역으로 보고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고 말했다.
8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드론 AI 기업 니어스랩은 직충돌형 고속 드론 ‘카이든’으로 에디슨 어워즈에서 상을 탔다. 니어스랩은 원래 풍력발전 드론 점검 시장에서 이름을 알린 회사인데 방산 분야로 영역을 확장해 성과를 냈다. 미래항공모빌리티(AAM) 회사인 디스이즈엔지니어링은 군용 드론 전문 자회사 시프트다이나믹스를 설립했다. 자율주행 로봇 기업인 뉴빌리티도 방산 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AI 스타트업들도 그동안 쌓아온 기술을 국방 분야에 적용하겠다고 나섰다. AI 플랫폼 기업 인피닉은 실제 데이터의 특성을 딴 합성 데이터를 제작해 국방 프로젝트에 제공한다. 청각 AI 솔루션 코클은 소리만으로 총과 비행기 종류, 적의 위치를 파악하도록 돕는다. 공간정보 AI 업체 다비오는 위성 영상만으로도 전장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국방 AI 기술 격차 4.1년
한국은 그동안 국방 분야에 첨단 기술 적용이 상대적으로 더뎠다. 무기 체계 설계부터 전력화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4.1년. 적극적으로 규제를 풀면서 방산 스타트업을 키우는 우크라이나, 무인기 초도 비행 후 3~4개월 안에 전력화하는 튀르키예 등과 대조적이다. 스타트업이 국방부나 군의 연구개발(R&D)에 참여하더라도 후속 양산에 대한 보장이 없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등 기술 최고국과의 국방 AI 기술 격차는 약 4.1년. 방산 AI 분야의 초기 전력으로 평가받는 ‘전장 인식과 판단’ 부문은 선진국 대비 78.3%, 전장에서 인간 지휘관의 ‘판단 결심을 지원’하는 분야는 76.5%에 불과하다.최근엔 분위기가 바뀌었다. 우리 군이 스타트업과 적극적으로 R&D를 진행하는 등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방산 대기업도 AI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기술 협력에 나서고 있다. 과거엔 전투기 몇 대와 항공모함 한 대로 공중전과 해상전을 치렀다. 지금은 수천 대의 드론과 전투로봇이 현대전을 이끌고 있다. 목표 설정과 공격 판단 등 전투 계획도 AI가 짠다. 적군의 미사일 발사 징후를 포착하는 것부터 군수품 재고 관리에까지 AI가 들어간다. AI와 손잡은 드론은 유인 전투기 자리까지 위협하고 있다.
방산 분야에 진출한 스타트업들은 해외 시장도 노리고 있다. 니어스랩은 자체 방산 드론을 해외에 먼저 팔았다. 최재혁 니어스랩 대표는 “우리 드론 가격은 미국 드론의 20분의 1 수준”이라며 “미국 공격드론의 성능이 좋지만 우리는 같은 가격으로 드론 20개를 깔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방산 스타트업 팔월삼일도 자폭드론 세이렌을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했다. 1주일에 세이렌 70∼80대를 제조할 수 있도록 생산능력을 높여 추가 수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계획이다. 오디오AI 기업 코클은 미국 넬리스 공군기지에 AI 기술을 공급하고 있다.
◇“데이터 규제 풀려야”
해외에선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AI 군비 경쟁이 치열하다. 스타트업들이 개발한 첨단 무기와 전술·전략 솔루션이 전쟁에 널리 쓰이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안두릴은 적의 무인 항공기를 탐지·추적하는 방어 체계와 AI로 실시간 지형지물을 분석해 비행하는 드론을 개발한다.또 다른 미국 스타트업 실드AI는 자율 드론 플랫폼으로 정찰 및 공격 능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기존의 유인 항공기가 위험을 감수하며 수행하던 임무를 대체하기 위해서다. 실드AI는 “AI 조종사는 인간에게 있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다. 사로닉은 무인 수상정을 개발해 해군 작전의 새 지평을 열었다. 운영 비용과 인명 손실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클리어뷰AI의 안면인식 소프트웨어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식별하는 데 쓰였다.
한국 방산 스타트업이 이들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선 국내 데이터 규제가 해소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무기와 솔루션 개발의 첫 단계가 ‘데이터 확보’인데 한국에선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큰 틀에서 정부 차원의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무기체계에 AI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평가와 검증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박찬봉 광운대 AI방산융합학과 교수는 “정부가 방향성과 기준을 제시해야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연구와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은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