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준호의 자본시장 직설] 4년 전 김병주는 해법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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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호 마켓인사이트부 기자▶마켓인사이트 4월 8일 오후 5시 3분

김 회장 이전엔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 블랙스톤 창업자 스티븐 슈워츠먼, 삼성과 현대자동차를 공격하며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폴 싱어 등이 초청됐다. 김 회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영예로운 순간으로 꼽은 때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MBK를 창업한 계기도 밝혔다. 그는 칼라일의 아시아 회장을 지내던 시절 “서양의 부를 위해 일하지 말고, 아시아의 부를 창출하기 위해 일하라”는 지인의 조언에서 창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부터 고(故)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의 ‘아시아 모델’을 삶의 이정표로 삼았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서구 모델과 다른 아시아 고유 형태의 자본주의 발전 모델을 PEF를 통해 실현하겠다는 포부였다.
PEF '아시아모델' 꿈꾸던 김병주

또 그는 레버리지를 활용한 PEF 투자에선 학문과 상법상 규정뿐만 아니라 사회적 시선, 철학적 개념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차입 거래가 활발한 서구와 달리 아시아에서는 금융회사는 물론이고 직원·고객·정부 당국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 논의한 뒤 중론을 모아 접근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홈플러스서 실종된 '포부'
홈플러스 기습 기업회생 사태로 창사 이후 최대 위기에 처한 MBK파트너스를 지켜보면서 자신 있게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던 4년 전의 김 회장이 떠오른다. 당시 그는 이미 수많은 근로자와 납품업체를 거느린 대형마트에 대한 기습 법정관리 발표가 어떤 여파를 낳을지 누구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상법상 가능하다는 이유로 단행한 레버리지 투자가 고객과 직원부터 금융회사, 정부 당국까지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홈플러스의 현재와도 대비된다.업계에선 MBK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다. 펀드의 수많은 포트폴리오 중 하나일 뿐인 홈플러스를 조기에 절연시켜 출자자(LP)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미국식 PEF의 논리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는 평가다. 김 회장이 자신은 홈플러스 경영과 관련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않다면서 국회 부름에 불응한 것도 전형적인 외국계 기업 경영진의 모습이었다. 작금의 행보는 한국계 ‘김병주’가 아니라 미국인 ‘마이클 병주 킴’ 시선에서 살필 때 이해 가능하다.
4년 전 강연 막바지에 김 회장은 “젊은 시절 김병주는 MBK에 취업할 수 있겠나”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답하며 훌륭한 PEF 운용역이 되기 위한 자질을 제시했다. “금융 스킬도 중요하지만 셰익스피어 소설에서 드러나는 사람의 심리, 사회상, 철학적 고민을 이해하는 배경과 지식을 다방면으로 갖추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문학에 ‘은유법’이 있듯이, 분절돼 있거나 상관없는 것을 연결하고 연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훈련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첨언했다. 4년 전 김 회장은 알고 있었던 홈플러스 위기 파훼법인 ‘공감능력’이 지금은 어디로 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