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의 마지막 7일

영화 '마리아' 리뷰
안젤리나 졸리 주연, 파블로 라라인 감독
16일 극장 개봉
영화 '마리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마리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1977년 9월 16일, 마리아 칼라스(안젤리나 졸리 분)가 생을 마감한 파리의 아파트. 차분한 피아노 반주 위에 칼라스가 부르는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의 '아베 마리아'가 흘러나오며 20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칼라스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조용하던 반주는 점차 대편성 오케스트레이션 사운드로 확대되고, 그녀의 목소리에도 어느새 힘이 실린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신작 <마리아>는 <재키>와 <스펜서>에 이어 '세기의 여성 3부작'을 완성하는 마지막 작품이다. 감독은 재클린 케네디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에 이어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디바로 기억되는 칼라스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보헤미안 랩소디'와 '레미제라블'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음악감독 존 워허스트가 음악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통해 아카데미 분장상을 수상한 아드루이사 리가 분장을 각각 맡아 칼라스의 음악과 외모를 스크린 위에 재현했다.

영화는 마치 한 편의 오페라처럼 4막으로 전개되며 칼라스의 마지막 일주일을 재조명한다. 은퇴한 소프라노를 맨드렉스(코디 스밋-맥피 분)라는 이름의 기자가 인터뷰하며 스토리가 진행된다. 사실 맨드렉스는 칼라스가 복용하던 신경안정제의 이름으로 기자는 실존인물이 아닌 그녀의 환각 속 인물이다. 생애 마지막 일주일을 그린 영화 속 칼라스는 신체와 정신이 모두 쇠약해진 모습이다. 약에 취해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의 기억을 조각처럼 꺼내 놓는다.
영화 마리아의 맨드렉스 /(c)판시네마
영화 마리아의 맨드렉스 /(c)판시네마
"준비가 되면 언제든 다시 노래할거에요"

이 대사는 칼라스가 자신의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에펠탑이 보이는 광장으로 향하며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대장간의 합창'이 흐르는 가운데 그녀는 밀라노에서 무대를 떠나기로 결심했고, 자신이 직접 의상을 불태웠다고 말한다. 음악 코치를 만나 푸치니 오페라 <잔니스키키>의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부르며 목소리를 되찾으려 애쓰는 장면은 단순한 발성의 문제가 아닌 칼라스 내면의 상처로 인해 예술적 자아가 붕괴된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마리아의 마리아 칼라스 역 안젤리나 졸리 /(c)판시네마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칼라스에게 무엇을 잃었는지를 묻는 대신, 그녀가 끝까지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를 조명하기 때문이다.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의 '정결한 여신'을 부르는 칼라스에게 감동적이었다는 말을 건네는 하녀 브루나(알바 로르와처 분)를 보며 칼라스는 감격한다. 일상 속에서도 청중들의 사랑을 갈망하는 예술가의 모습이 그대로 표현된다.
영화 마리아의 칼라스와 오나시스 /(c)판시네마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그녀가 끝내 이루지 못한 오나시스(할룩 비기너 분)와의 사랑에 대한 기억, 그가 선물한 두 마리의 애완견들과 마지막까지 동거하는 모습을 통해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다만 돌아오지 않는 목소리에 대한 병적인 갈망이나 타인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스러운 모습 등 무대에서 내려온 예술가가 마주한 절망적 감정을 좀 더 세밀하게 풀어냈다면, 영화를 보는 일반 관객이 무대에 서지 못하는 예술가의 고통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마리아의 페루치오 /(c)판시네마
영화에는 칼라스의 사생활과 관련된 흥미로운 요소가 숨어 있다. 집사 페루치오(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 분)는 세기의 명반으로 손꼽히는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녹음할 때 에드가르도 역할로 칼라스와 함께 노래한 이탈리아의 테너 페루치오 탈리아비니와 이름이 같다. 하지만 그의 외모는 칼라스의 마지막 은퇴 공연에 함께 출연한 리릭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와 닮았다. 감독은 페루치오라는 인물을 통해 생전의 칼라스와 긴밀했던 두 테너 성악가를 간접적으로 비춰 그들이 남긴 역사적인 기록과 관계를 기억했다. 마지막 밤, 칼라스가 페루치오와 브루나의 미래를 축복하는 장면은 끝내 실현되지 못한 칼라스와 디 스테파노 사이의 애틋한 감정을 암시한다.
영화 마리아의 마리아 칼라스 /(c)판시네마
스크린 속 칼라스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12개의 가발과 수백개의 헤어핀으로 칼라스 특유의 바로크적 헤어스타일을 재현했다. 여기에 뿔테안경까지 더해진 졸리는 칼라스 그 자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7개월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졸리의 연기 위에 칼라스의 음성을 자연스럽게 덧입힌 워허스트는 음악 편집 기술과 적절한 선곡으로 극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끌어올렸다. 특히 칼라스가 케네디 전 대통령과 만나는 장면에서 칼라스의 목소리로 부른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Addio del Passato'(안녕 지나간 옛날이여)가 흘러나올 때,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과 가사의 내용이 일치하며 극적인 사실감을 더해준다.

죽음을 앞둔 칼라스가 푸치티 오페라 <토스카>의 '음악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르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졸리는 나뭇가지 같은 손목에 힘줄이 드러날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 떨리는 입술로 생애 마지막 아리아를 노래한다. 마지막으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과 함께 흐르는 칼라스의 생전 영상은 마지막 무대를 앞둔 그녀를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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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영화 마리아 포스터 / (c)판시네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