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내부가 개기일식이 펼쳐지는 하늘로...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arte] 배혜은의 차이나 아이코닉

경제 발전의 주역이 현대 예술 교류의 장으로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PSA)'
옥상 정원에서 바라보는 상하이의 와이탄 뷰.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푸동미술관을 나와 구불구불한 황푸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향하다 보면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Power Station of Art)에 다다른다. 미술관의 영문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과거 발전소였던 건물이 2012년에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위쪽부터)과거 상하이 난시 발전소(上海南市发电厂)와 현재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 사진출처.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아카이브
(위쪽부터)과거 상하이 난시 발전소(上海南市发电厂)와 현재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 사진출처.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아카이브
황푸강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강물을 열원으로 사용하고 태양광 기술을 도입하는 등 친환경 기술을 적용한 대표적인 건축 사례로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중국 자본으로 건설된 상하이 최초의 발전소가 무려 110년 동안 전기를 만들어냈고, 2010년 상하이 엑스포의 ‘도시 미래관’을 거쳐, 이제 도시 문화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며, 상하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굴뚝 안에서 작품을 만나다

165m 높이의 거대한 굴뚝이 시선을 사로잡는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은 중국 현대 미술을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국영 미술관이다. 특히 텅 빈 굴뚝 내부에는 나선형 갤러리가 조성돼, 특별한 날에는 한시적으로 발전소의 대형 굴뚝이라는 공간 속에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대중을 위한 미술’이라는 브랜드를 지향하는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은 1996년에 창설된 중국 본토 최초의 국제 현대 미술 비엔날레인 ‘상하이 비엔날레’의 개최 장소라는 상징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굴뚝 내부 나선형 갤러리 / 사진출처.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아카이브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굴뚝 내부 나선형 갤러리 / 사진출처.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아카이브
2018년 제12회 상하이 비엔날레에서 멕시코 예술가 파블로 바르가스 루고(Pablo Vargas Lugo)는 굴뚝 내부의 공간을 무대로 120여 명의 상하이 현지 중학생들과 함께 향후 1000년 내 상하이에서 관측될 두 번의 개기일식을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굴뚝 내부의 어두운 공간은 일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하늘로 형상화되었고, 그 안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색상의 종이판과 오케스트라 연주로 공연을 선보였다. 관람객들은 굴뚝 내부를 둘러싼 나선형 계단에서 마치 또 다른 시공간에 들어선 듯 해당 공연을 관람했다.
[좌] 《상하이 일식》(上海日食) 공연 현장 조감도, 2018년 [우] 외부에서 바라본 굴뚝 / 사진출처.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아카이브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지는 널찍한 공간과 높은 층고를 활용하여 대형 설치 미술까지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이곳은, 소장품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들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제공하는 데 주력한다. 상하이에서도 큰 화제를 모은 중국 현대 여성 예술가 인시우전(Yin Xiuzhen)의 대형 작품들이 2024년 말부터 2025년 초까지 미술관의 광활한 공간을 가득 채웠다. 마침, 같은 시기에 그녀가 참여한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2024.09.03.~2025.03.03.)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도 열려, 한·중 양국에서 그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마련됐다.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인시우전: Piercing the Sky' 전시 전경 / 사진. ⓒ배혜은
초여름을 맞이하는 전시

푸동미술관이 위치해 있기도 한 루자주이(陆家嘴·Lujiazui) 지하철역에 등장했던 두 점의 대형 벽화는 바로 2025년 봄 여름,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을 채울 프랑스 예술가 파브리스 이베르(Fabrice Hyber)가 중국 도자기의 도시 징더전(景德镇)의 장인들과 협업해 오직 상하이만을 위해 제작한 채색 자기 유약 작품이다.
상하이 루자주이 지하철 내 전시된 파브리스 이베르의 작품과 예술가 본인 / 사진출처.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사이트
그는 2021년, 중국·라틴아메리카·인도·이란·유럽 등지에서 온 30여 명의 예술가가 ‘나무와 자연의 아름다움, 그 속의 지혜’를 탐구한 작품을 선보인 <나무, 나무(树,树)>(2021.07.09.~2021.10.10) 전시에 참여한 데 이어, 이번에는 <산골에서 오다(从山谷中来)>(2025.04.02.~2025.06.29)라는 개인전을 통해 다시금 중국 관객과 마주하고 있다. 파브리스 이베르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녹색의 거대한 '이베르 테디'를 전시장 곳곳에서 찾아보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녹음이 우거지는 상하이를 초록빛으로 물들 전시에 이미 이른 여름을 맞이한 듯한 기분이다.
[좌] '산골에서 오다' 전시 포스터 / 사진. ⓒ배혜은 [우] 파브리스 이베르 전시 전경 / 사진출처.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사이트
상하이예술박물관은 어떻게 미술관으로서의 개성과 정체성을 확립할 것인지, 그리고 문화 기관으로서 공공성을 발휘하여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토론과 공유의 장을 형성해 나갈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과거 산업 유산은 예술적 공간으로 변화했고, 굴뚝에서는 이제 더 이상 전기를 만들어내는 연기를 볼 수는 없지만, 대신 문화예술을 향한 열망과 다양성을 논하는 열띤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야경 / 사진. ⓒ배혜은
배혜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