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안전자산인데…"중국이 팔아치운다" 소문에 '발칵' [김인엽의 매크로 디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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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폭등에 '안전자산' 미국채 휘청…불안 키운 세 가지 변수
트럼프 정책 불안에 美 신뢰 떨어져
3년물 국채 응찰률도 평균 밑돌아
마진콜 받은 헤지펀드는 현금 확보
관세에 '中 보복성 국채 매각'설도

9일 요동치는 국채 시장을 두고 파이낸셜타임즈(FT)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날 글로벌 채권 벤치마크인 미국채 가격이 급락(국채 가격 상승)했습니다. 한때 미 국채 금리는 연 4.516%로 전거래일보다 0.36%포인트, 이틀 전보다는 0.63%포인트 뛰었습니다.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큰 폭의 매도세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 국채는 자산 중에서도 가장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파산(디폴트)할 확률은 극히 낮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주식시장이 붕괴하면 국채 가격이 오르곤 했습니다. 지난 7일까지는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국채 금리가 연 3.9%까지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틀만에 이토록 금리의 운명이 바뀌었을까요. 세 가지 요인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금리를 움직인 기간 프리미엄
장기 국채의 가격은 아래와 같이 계산됩니다.장기 국채 금리=단기 국채금리+기간 프리미엄

기간 프리미엄은 만기가 긴 채권을 보유하는 대가로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추가 수익률을 말합니다. 당장 내일 대출금을 갚으라고 하면 상환할 확률이 높지만, 1년 뒤에 갚으라고 하면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니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는 셈입니다.
이 중 단기 금리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의 판단입니다. 시카고상품거래소 Fed워치에 따르면 채권시장은 다음달 7일 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출 확률을 49.8%로 보고 있습니다. 전날보다 5%포인트 가량 수치입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무역전쟁으로 미국 경기가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에 Fed도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에 기간 프리미엄이 미국채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라자드의 로널드 템플 수석 시장 전략가는 로이터에 "정부 기능의 안정성, 연방 관료제에 대한 불확실성, 법치주의와 예측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공무원을 대거 감원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오히려 나라의 불안정성을 키운다는 뜻입니다. 로이터는 애널리스트 6명을 인용해 "이들은 미국 부채를 관리하기 위한 비전통적인 전략을 모색하려는 의지와 대규모 감세를 추진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열망도 채권 투자자들에게 위험 요소라고 말한다"고 전했습니다.
'유동성 위기' 헤지펀드들의 국채 청산
증시 하락에 따른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직면한 헤지펀드들이 국채 매도세의 진앙이라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최근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자 헤지펀드들이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이에 담보로 잡혀 있던 국채를 급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미국 주요 은행들이 최근 일부 헤지펀드에 마진콜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월가는 헤지펀드들이 국채를 팔기 위해 '베이시스 트레이드'를 청산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국채 선물과 현물 간의 가격 차이(basis)를 활용한 차익거래 전략을 말합니다. 가격 차가 미미해 50~100배의 레버리지를 활용합니다.
토르스텐 슬록 아폴로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운용 중인 베이시스 트레이드 규모는 약 8000억달러(약 1187조원)에 달한다”며 “외부 충격 발생 시, 이 거래 포지션의 청산이 국채 시장에 매도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2020년 팬데믹 초기에도 베이시스 트레이드 청산이 국채 가격 급락을 유발한 전례가 있습니다.
이번 청산 움직임은 아직 주식 시장까지 충격을 주는 수준은 아니지만, 국채 시장 유동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당국과 투자자 모두 긴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미국채 매도설
월가에서는 중국이 미국채를 팔아치우고 있다는 풍문도 들립니다. 미 국채 금리 폭등 시점이 미국이 중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한 시기와 맞물리면섭니다. 이번 금리 급등이 미국 시간으로 새벽, 동북아 기준 낮 시간대에 집중됐다는 점도 이러한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배경입니다.현재 트럼프 대통령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미 국채 금리를 최대한 낮춘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미 국채를 리파이낸싱할 때 이자 부담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서입니다.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위해 투자 비용을 낮춘다는 점에서도 국채 금리는 중요합니다. 중국이 미 국채를 매도해 금리를 높여버리면 이러한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게 됩니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7608억달러로 일본 다음으로 많습니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은 2013년 11월 1조 3167억달러로 정점을 찍은뒤 계속 감소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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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