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은 '죽은 원전'도 되살린 판에…한국은 2년간 뭐했나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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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은 죽은 원전도 되살리는데
고리2호기, 2년째 '개점휴업'
국가적 손실 1조원 훌쩍 넘어서

일본 국제안보무역협회장인 스즈키 카즈토 도쿄대 교수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한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동 원전의 수명을 늘리는 계속운전 결정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도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죽은 원전도 되살린 美 마이크로소프트
스즈키 교수의 주장은 그가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파격적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자로 셧다운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3년 전 탈원전 폐기를 선언한 뒤 지금까지 원자로 14기를 되살렸고, 그중 8기에 대해서는 기존 40년 설계수명에 더해 20년 계속운전을 허가했다.대표적 원전 강국이었으면서도 글로벌 탈원전 흐름에 동참했던 미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포착된다. 지난해 말 미국 콘스텔레이션에너지가 5년간 폐쇄된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2호기의 재가동을 결정한 건 '원전 르네상스'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전기를 직접 구매한다고 발표하며 원전 계속운전에 베팅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 세계 가동 원전 439기 중 238기(54%)가 계속운전 승인을 받았고, 그 중 204기(46%)가 실제 수명을 연장했다. 미국에서는 가동 원전 94기 가운데 86기(91%)에 대해 계속운전 허가가 떨어졌다. 특히 미국의 경우 계속운전은 20년씩 최대 2차례 신청(총 80년 운전)이 가능한데, 현재 두 번째 계속운전을 허가받은 원전도 8기에 달한다. 8기의 원자로가 총 80년 운영될 것이란 의미다.
2년째 놀고 있는 한국 고리2호기, 왜?

원전 업계는 "최근 3년 사이에 2030년까지 운영허가가 끝나는 원자로 10기에 대한 계속운전 신청이 몰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뤄둔 신청을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심사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업무도 가중되고 있다. 계속운전 신청의 적기를 놓친 고리2호기는 운영허가 만료일(2023년 4월 8일) 이후 2년째 '개점휴업' 상태다. 우리나라는 심사 기간만큼 추가 수명(10년)을 갉아먹는 구조라서 심사가 길어질 경우 10년 추가 기간을 온전히 이용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에서 원전 계속운전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 교수는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국내 모든 가동 원전들의 계속운전을 전제로 짜둔 것이라 (고리2호기처럼) 계속운전 신청을 늦게 하거나 심사가 길어질 경우 전기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11차 전기본에서 2038년까지 수명 연장을 가정한 원전 14기의 발전용량은 총 17.3기가와트(GW)에 달한다.
"오래 써야 안전하다"
원전은 가동 연수가 늘어날수록 안전성이 커진다는 분석도 있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 교수는 올해 초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실이 진행한 세미나에서 "국내 최초 상업 원전인 고리1호기의 경우 초창기 잦았던 불시정지(고장)가 계속 운영되면서 급감했다"고 말했다.OECD/NEA는 "발전소의 장기 운영과 계속운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설비를 개선하기 때문에 최초 운전 시보다 계속운전을 할 때 안전성이 더 커진다"고 분석했다. 김광일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설비개선팀장은 "애초에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원전 첫 수명을 40년으로 규정한 것도 안전성 규제가 아닌 독점 금지가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 교수는 "원전 사업자 입장에서는 안전성을 높이는 핵심 설비를 추가하고 싶어도 10년이 채 안 되는 추가 사업기간으로는 경제적 타당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일본처럼 계속운전 기간을 기존 10년에서 20년으로 늘리고, 심사 중에도 임시로 가동을 할 수 있게 하는 등 제도 개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