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발레에 일생 바친 M발레단 문병남 예술감독 별세

'왕자호동'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등
한국의 역사, 문화를 담은 창작 발레 만든 인물
한국 발레 발전에 평생을 바친 문병남 M발레단 예술감독이 9일 별세했다. 향년 64세. 고인은 1984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10년간 주역 무용수로 활동하며 한국 발레의 태동기를 이끈 인물이다. 이후 국립발레단의 지도위원, 상임안무가, 부예술감독을 역임했다.
문병남 M발레단 예술감독
문병남 M발레단 예술감독
고인은 2009년 국립발레단의 부예술감독 시절, 국가브랜드사업 1호 작품인 '왕자호동'을 안무해 한국적 전막 발레를 완성한 안무가이기도 했다. '왕자호동'은 2011년 이탈리아 산 카를로스 극장에서 열린 국제 댄스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초청돼 한국인 최초로 세계 무대에 진출한 전막 발레 작품을 만든 기록을 세웠다. 해외 라이센스 발레 작품 수입에 의존해왔던 국립발레단은 이 작품을 계기로 한국 창작 발레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국립발레단을 나온 고인은 2015년 M발레단을 창단했다. '왕자호동'과 같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대표 창작 발레 작품들을 구상하고 창작했다. 또 클래식 발레 레퍼토리(돈키호테 등)를 우리만의 프로덕션으로 완성하는 업적도 이뤘다. "한국 발레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싶다"는게 고인의 평생 바람이었다.
M발레단의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BAKI
M발레단의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BAKI
그의 대표 안무작 가운데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2015년 무용창작산실 우수작이 돼 초연한 뒤 2021년부터는 서울 예술의전당 창작발레로 다시 제작됐다. 2022년에는 제12회 대한민국발레축제 개막작이 돼 명실상부한 스테디셀러가 됐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은데다 초연 후 10년을 맞는 기념비적인 해였다.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지난달 열렸던 공연은 전 2회차 매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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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주요 작품으로는 '왕자호동'과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을 비롯해 '오월바람', '처용', 그리고 '돈키호테' 등이 있다. 1987년 '86 아시안게임 기념 문화부장관상'과 1988년 '88년 서울올림픽 기념 문화체육부장관상', 1992년 국립발레단 창단 30주년 공로상, 2018년 발레협회상 대상 등 굵직한 상도 여러번 받았다.

한편 부고 소식이 전해진 9일 저녁부터 10일까지 중앙대학교 장례식장에 마련된 문병남 단장의 빈소에는 무용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창작 10주년을 맞아 지난 3월 공연된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에서 안중근으로 열연했던 발레리노 이동탁(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은 가장 최근 문 단장과 연습했던 사이다. 그는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빈소로 달려와 목놓아 울었다. 그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 전 복잡한 심경을 표현할 때 갈피를 잡지 못할 때, 곁에 다가와 함께 연습실 바닥에 누워 '야수, 야수! 호랑이 한 마리를 무대 위에 풀었다고 생각해봐!'라고 독려해주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문 단장은 언제나 무용수들과 가장 가까이 호흡하며 무대에 설 수 있는 기백과 영감을 주시는 따뜻한 분이었다"고도 덧붙였다.

입관식이 거행된 10일 정오, 양영은 M발레단장과 조문객들의 눈이 더없이 붉어졌다. 입관식에는 문 단장이 국립발레단 시절부터 육성한 수많은 무용수들이 자리했다. 김현웅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는 "늦게 발레를 시작한 제게 수많은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신 분"이라며 "엄격하신 데다 칭찬에 인색하셨지만, 제가 교육자가 돼 보니 아끼는 제자일수록 호되게 혼내게 되는 스승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손유희 선화예술중학교 무용부 강사(전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는 "문병남 선생님은 자신보다 무용수를 아끼셨고, 발레에 수많은 헌신을 하신 큰 사람이셨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어리고 미숙했던 무용수 시절의 저를 한없이 아껴주셨던 기억이 생생한데,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게 애통하다"고 말했다.

국립발레단장을 두번이나 역임하면서 문병남 단장과 가족처럼 지냈던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은 빈소를 내내 지키며 조문객들에게 고인과의 수십년전 추억을 들려주며 울고 웃었다. 최 전 단장은 "일본에서 한국에 갑자기 국립발레단에 들어와 많은 어려움이 겪을 때 나를 따뜻하게 품어준 동료였다"며 "왕자호동과 같은 전막 대작을 창작한 일은 한국 발레사에서 다시 한번 재조명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밖에도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김주원 대한민국발레축제 예술감독(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등도 빈소를 찾았다.

발인날인 11일에는 김현웅 한예종 교수를 비롯해 후배 발레리노들이 문병남 단장의 관을 운구한다. 오후 1시에 관을 실은 운구차량이 서초동 국립발레단을 한바퀴 돌면서 조촐한 추모식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후 문병남 M발레단장은 영면에 든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분당추모공원 휴.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