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본 건가?…여의도 '벚꽃축제' 갔다가 깜짝 놀란 이유 [현장+]

"벚꽃만큼 시민의식도 피어났다"…쓰레기 사라진 여의도

쓰레기더미 사라진 벚꽃길…쓰레기 전년比 30% ↓
직접 둘러보니…주요 쓰레기통 4곳 모두 깨끗해
"공공장소나 집회 정돈된 모습 관찰 후 행동 변화"
10일 점심시간 벚꽃 구경을 나온 시민들/사진=유지희 기자
10일 점심시간 벚꽃 구경을 나온 시민들/사진=유지희 기자
해마다 벚꽃이 만개하면 수백만 인파가 북적이는 여의도.

'꽃은 지고 쓰레기만 남는다'는 말이 익숙할 만큼 돗자리를 펴고 봄을 정취를 즐기는 풍경 뒤엔 늘 쓰레기와 악취가 가득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벚꽃과 함께 보다 성숙해진 질서와 배려도 피어났다.

"예전엔 너무 더러워서 쥐가 돌아다니는 것도 봤어요. 그런데 이번엔 정말 깨끗하더라고요."

10일 점심, 한강공원을 찾은 대학생 이채원(22) 씨는 돗자리에 앉아 여유를 즐기며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예전에는 쓰레기가 너무 많고 불쾌해서 꽃보다 주변이 더 눈에 들어왔는데 올해는 확실히 눈으로 보일 정도로 깨끗했다"며 "나도 뭔가 책임감을 느끼고 쓰레기를 잘 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은 평일임에도 한강공원에는 봄꽃을 즐기기 위한 시민들로 가득했다. 오는 주말, 강풍과 낙뢰를 동반한 비가 예보되면서 벚꽃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한 사람들이 서둘러 공원을 찾은 것이다.

점심 피크닉을 즐기는 시민들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청결한 풍경'이었다. 잔디밭에는 눈에 띄는 큰 쓰레기 하나 없었다.
깨끗한 여의도 배달존 앞 쓰레기통의 모습,분리수거도 잘 된 모습/사진=유지희 기자
깨끗한 여의도 배달존 앞 쓰레기통의 모습,분리수거도 잘 된 모습/사진=유지희 기자
기자가 직접 둘러본 여의도 한강공원 내 4곳의 쓰레기통도 넘치지 않았으며 주변도 깨끗했다. 일부 시민은 다른 사람이 쓰레기통 위에 무심코 올려둔 쓰레기를 안쪽으로 밀어 넣는 모습도 보였다. 식사 후 자리를 정돈하는 시민들 덕분에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봄꽃축제가 만들어졌다.

올해 봄꽃축제, 전년 대비 쓰레기 30% 줄어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여의도 봄꽃축제 기간(10일) 하루 평균 10톤, 총 101톤의 쓰레기가 배출됐으나, 올해는 같은 기간 대비 약 3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변화의 배경에는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됐다는 분석이다. 서울시는 2023년부터 불법 노점상 단속을 강화했고 올해는 특히 아예 주요 동선과 계단 위에 노점상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과거 여의나루역 2번 출구는 전단지를 나눠주는 상인들과 불법 노점상들로 몸살을 앓았지만 매년 그 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노잠상과 전단지가 사라진 여의나루역 2번출구의 모습/영상=유지희 기자
취업준비생 주유진(25) 씨는 "예전엔 전단지 나눠주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 났는데, 올해는 그런 게 없고 경관이 트여서 좋다"며 "노점상도 줄고 쓰레기통도 잘 정돈돼 있어 편리하게 버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수십 년째 남편과 함께 여의도 벚꽃축제를 찾는다는 주부 김하은(58) 씨는 "최근 몇 년간 젊은 사람들 배달 음식 먹고 버리고 가서 냄새도 심했는데, 올해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며 "젊은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정말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쓰레기 관리를 더욱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미래한강본부 관계자는 "방문객들이 큰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잘 버려주면 가까운 장소에서 서울시가 전량 수거하고 분리 작업까지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회용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여의도 한강공원 3곳과 뚝섬한강공원 2곳에 '배달 음식 다회용기 반납함'을 설치해 운영 중이다. 시민들은 이곳에 다회용기를 반납할 수 있으며, 시는 이를 따로 수거해 세척 후 재사용하고 있다.

공공안전관 10~15명이 여의도 축제 현장에 투입돼 여의도 한강공원 집중 관리에 들어갔다.

전문가 "다수가 질서 지키는 모습 영향 받아"…최근 대규모 집회서도 확인

여의도 봄꽃 축제/사진=유지희 기자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변화다. 전문가들은 심리학적으로도 '다수가 질서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 개인도 같은 행동을 따르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시민의식의 향상은 다른 대규모 집회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반 촛불 시위에서도 수백만 명의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하고 종류별로 분리해 버리는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했으며 국내외 언론을 통해 "성숙하고 청결한 한국인의 시민의식을 각자가 스스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관찰학습이란 단순히 관찰만으로도 행동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며 "최근처럼 공공장소나 집회에서 시민들이 질서를 지키고 깨끗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아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쓰레기더미 위에는 쉽게 쓰레기를 버리지만, 쓰레기통 주변에 쓰레기가 없다면 개인은 오히려 어지럽히는 데 부담을 느껴 정리하고 청소하며 규칙을 지키는 행동을 하게된다.고 덧붙였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