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LG 배터리 갈등 봉합?…SKIET, LG엔솔에 분리막 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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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30만 대 분량 공급
SKIET는 미국에 있는 배터리 셀 제조업체에 전기차용 배터리 분리막을 공급한다고 10일 밝혔다. 물량은 전기차 30만 대 분량으로, 공급 시기는 이달부터 내년까지다. 금액으로 따지면 1000억원 넘는 규모다. SKIET는 계약 조건에 따라 고객사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최종 납품처가 LG에너지솔루션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단 LG화학이 SKIET로부터 분리막 원단을 넘겨받아 가공한 뒤 LG에너지솔루션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두 기업의 악연은 2011년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에 배터리 기술과 관련된 특허 침해 소송을 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19년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이 기술 탈취와 불법 인력 스카우트를 이유로 SK온을 미국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2020년 한국과 미국에서 법적 소송이 이어지며 양측은 배터리 관련 모든 거래를 끊었다. 당시 양사는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냈고, LG에너지솔루션은 SKIET, SK넥실리스 등 SK 계열 배터리 소재 기업의 영업사원이 회사를 방문하는 것조차 막았다.
결국 2021년 2월 ITC는 SK온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 비밀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SK온의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10년간의 미국 수입 금지 명령도 나왔다. 하지만 정부의 설득 및 여론 악화로 양사는 SK온측이 2021년 4월 약 2조원 규모의 합의금을 지급하는 것을 조건으로 법적분쟁을 종료하기로 했지만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SKIET는 직격탄을 맞았다. 2007년부터 13년 동안 납품해온 LG에너지솔루션을 잃은 여파로 지난해 적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미국의 중국산 배터리 소재 배제 정책과 예상보다 길어지는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침체) 등으로 두 회사 모두 어려움에 빠지자 다시 예전의 협력 체제를 복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가 안겨준 협력 재개

트럼프 정부가 ‘관세 폭탄’뿐 아니라 중국 기업들의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한 조치를 내놓고 있는 만큼 LG에너지솔루션도 미국에서 만드는 배터리용 분리막을 한국산으로 대체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SK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거래하지 않겠다”는 이전 경영진과 달리 “가격만 맞으면 거래를 재개할 수 있다”는 LG에너지솔루션 현 경영진의 판단도 거래 재개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 대표 등 경영진이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경영 판단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SKIET가 LG에너지솔루션과 거래선을 다시 트면서 SK그룹의 또 다른 배터리 소재 업체인 SK넥실리스에도 기회가 올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배터리용 동박을 제조하는 SKC의 자회사 SK넥실리스도 오랜 기간 LG에너지솔루션에 물량을 공급했지만 2020년 소송 이후 재계약을 맺지 못했다. SK넥실리스는 LG에너지솔루션에 납품하던 물량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등에 빼앗기면서 적자로 돌아섰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