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의 철학이 깃든 '태양을 담은 집'

[arte] 유승준의 내 인생의 가우디

스페인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였던
에우세비 구엘 이 바치갈루피,
가우디 작품에 반해 '구엘 저택' 만들어지다

저택 인근에 가난한 사람 많아
회색빛으로 외관 덮어 위화감 줄여

내부 들어서면 중후한 느낌의 건축 자리해

천장에 구멍 뚫어 햇빛 들어오게 설계
구엘과의 운명적인 만남

가우디는 1878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출품할 상품 진열대를 만들었다. 자신이 단골로 다니는 남성복을 만들어 파는 코메야 장갑 상점 주인 에스테바 코메야로부터 작업 의뢰를 받은 것이다. 건축가가 된 가우디는 예전의 병약하고 초라한 시골뜨기가 아니었다. 세련된 도시 남자, 즉 댄디 보이였다. 머리를 단정히 정돈하고 수염을 깔끔하게 자른 그는 고급스러운 정장을 차려입었다. 양복 주머니에는 직접 만든 멋진 명함을 넣고 다녔다. 사람들과 잘 어울렸으며 극장에 가서 오페라를 자주 관람했고 마차를 타고 건축 현장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소박하다 못해 거리의 부랑자로 취급받던 말년의 가우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부자인 건축주들을 상대해야 했기에 외모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지만, 내면에 가득 찬 슬픔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멋쟁이 신사인 것처럼 보여야 했을 것이다.

당대 최고의 장인이었던 에우달드 푼티의 작업실에서 가우디가 만든 상품 진열대를 본 에스테바 코메야는 대만족이었다. 가우디는 중요한 행사에 출품할 상품을 진열하게 될 장에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재료를 동원했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장식 기술을 망라했다. 학교에 제출할 과제물이 아니었기에 어떤 제약도 없이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한껏 발휘했다. 이 진열대 하나가 가우디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당시 일 때문에 만국박람회를 몇 차례 둘러보던 구엘의 눈에 상품이 아닌 진열대가 눈에 띈 것이다. 막대한 부를 소유했던 구엘은 단지 돈 많은 부자, 즉 부르주아가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귀족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자면 그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어야 했다. 보이지 않는 품격은 자신이 갈고 닦아야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품격은 누군가가 만들어줘야 한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움과 파격성을 갖춘 실력 있는 건축가를 찾던 그의 눈을 가우디의 진열대가 단박에 사로잡은 것이다.

스페인관에 전시된 가우디 작품을 보고 감명받은 구엘은 만국박람회가 끝난 어느 날 푼티의 작업실을 불쑥 찾아왔다. 가우디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첫 만남에서부터 둘은 의기투합했다. 서로가 상대방의 진심과 진가를 알아본 것이다. 가우디보다 여섯 살 위인 구엘은 그날부터 죽는 날까지 우정을 간직했다. 그는 건축을 의뢰하고 지갑을 여는 사람이었기에 언제나 갑의 위치에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 흔한 갑질을 하지 않았다. 구엘은 항상 가우디를 존중했고 마음속 깊이 그를 존경했다.
젊은 시절의 구엘.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진 그는 바르셀로나 최고 부자로 소위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였다. 그는 평생 가우디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절친한 벗이 돼주었다. / 사진. 필자제공
젊은 시절의 구엘.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진 그는 바르셀로나 최고 부자로 소위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였다. 그는 평생 가우디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절친한 벗이 돼주었다. / 사진. 필자제공
에우세비 구엘 이 바치갈루피(Eusebi Güell i Bacigalupi, 1846~1918),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구엘의 아버지 호안 구엘 이 페레르는 쿠바에서 노예 상인으로 많은 돈을 번 다음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직물 사업 등을 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의 어머니 역시 제노바의 고대 상인 가문 출신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구엘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집안의 부를 더욱 늘렸다. 1871년에는 노예 상인이었던 안토니오 로페스 이 로페스의 딸 루이사 이사벨 로페스 이 브루와 결혼함으로써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금실이 좋은 구엘 부부는 열 명이나 되는 자녀를 두었다.

구엘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정계와 문화계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법학, 경제학, 응용과학 등을 공부해 박학다식했던 그는 과학자, 문인, 예술가를 후원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많은 회사를 경영하는 와중에 틈틈이 책을 번역하거나 저술할 정도였다. 한마디로 그는 돈과 권력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폭넓은 교양을 갖춘 인물로 자신이 가진 것을 통해 좀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런 기질과 취향은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딸 중에 이사벨 구엘 이 로페스는 유명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민족주의자로서 카탈루냐의 전통과 문화를 알리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포물선 아치와 자연광이 쏟아지는 돔 천장

구엘 저택은 람블라스 거리 남쪽 골목에 있다. 가우디의 가로등이 서 있는 레이알 광장 맞은편이다. 구시가지인 이곳은 당시 공공연하게 매춘이 이루어지고 마약이 거래되던 우범 지대였다. 부지는 협소했고 주변에는 직선으로 된 회색빛 건물들이 나란히 자리한 상태였다. 골목에 들어서서 무심코 걷다 보면 구엘 저택을 그냥 지나칠지도 모른다. 카사 비센스처럼 눈에 띄는 두드러진 요소가 없는 데다 카사 바트요나 카사 밀라처럼 사람들이 운집해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입문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고개를 들어 옥상을 살펴보면 예사롭지 않은 건물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의심의 여지 없는 가우디의 흔적이다. ‘Palau Güell’ 건물 왼쪽 벽 하단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집을 구엘 궁전이라 부른다. 그런데 궁전의 사전적 의미는 임금이 거처하는 집이다. 건물을 짓기 시작한 1886년 구엘은 왕은 물론 작위를 받은 귀족도 아니었다. 따라서 이 집을 궁전이라 부르기는 적절치 않다. 규모도 궁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다. 궁전 같은 저택이라고 하는 게 무난하다.
구엘 저택 출입문. 이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보수적인 데다 인근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가우디는 외관을 튀지 않게 회색빛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 사진. ⓒ김혜경
정면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 출입문과 주변 장식이다.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두 개의 포물선 아치 속에 철제 대문이 놓여 있다. 포물선은 변화와 역동성을 보여준다. 왼쪽은 들어가는 문이고 오른쪽은 나오는 문이다. 마차가 드나들어야 했기에 대문의 높이가 상당하다. 카사 비센스의 자유분방함이 타일로 표현됐다면 구엘 저택의 묵직함은 철로 표현되었다. 건물 창문에 설치된 쇠창살은 밋밋한 게 하나도 없다. 새끼줄처럼 꼬여 있거나 얼기설기 휘어져 있다. 대문도 마찬가지다. 쇠를 진흙 다루듯 자유자재로 빚어 놓았다. 왼쪽 대문 위에는 알파벳 ‘E’ 오른쪽 대문 위에는 ‘G’를 새겨 넣었다. 에우세비 구엘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머리글자를 둘러싼 장식은 악기 모양을 형상화했다. 연회용 주택에 어울리는 이미지다. 철제 대문 위쪽의 현란한 파도 모양 굴곡은 뱀 장식이다. 아래쪽을 보면 뱀이 잔뜩 입을 벌리고 있다. 뱀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해 선악과를 따먹게 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존재지만, 정반대로 치유와 구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를 지날 때 하느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다가 독사에 물려 죽게 되었다. 이때 모세가 청동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았다. 사람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청동 뱀을 쳐다보면 살 수 있었다. 이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도 연결된다. 가우디는 구엘의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뱀을 바라봄으로써 치유와 구원에 이르기를 소망했을지 모른다.

두 대문 사이에는 철로 만든 장대한 조형물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카탈루냐 문장이다. 노란색 바탕 위를 가로지르는 붉은색 선을 매끈한 네 개의 가로줄로 표현했다. 원기둥 위를 나선형으로 뻗어나가는 줄 끝에는 뱀처럼 구불거리는 띠가 불규칙하게 이어져 있다. 대단히 과감한 디자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깃발보다 더 강렬하다. 문장 위쪽에는 가시 모양의 투구 위에서 불사조 한 마리가 날갯짓하고 있다. 깃털의 움직임이 곧 날아오를 듯 정교하다.
가우디는 값비싼 재료인 철을 마음껏 썼으며 도금한 철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철을 녹이고 자르고 꼬아서 만든 다양한 풀과 꽃과 나뭇잎 장식은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다. / 사진. ⓒ김혜경
실내에 들어서면 가운데 대리석 계단이 놓여 있고 그 위로 붉은색 카펫이 깔려 있다. 계단 오른쪽에는 지하 마구간으로 내려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왼쪽으로 네 칸짜리 작은 계단이 보이는데, 이것은 입구로 들어온 마차가 여기 정지하면 내려서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주인이 내리면 마차는 정면 문을 거쳐 마구간으로 향한다. 마차와 말들이 머무는 지하는 거대한 동굴 같은 느낌이다. 버섯처럼 생긴 벽돌 기둥이 이채롭다. 건물의 하중을 받치면서도 미학적으로 숲 같은 분위기가 나게끔 건설되었다. 가우디는 말의 배설물에서 풍기는 냄새가 잘 빠지도록 환기에 역점을 두었으며, 말발굽과 마차 바퀴에서 나는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도록 바닥에 나무를 깔아 방음 효과를 낼 수 있게 전용 도로까지 만들어두었다.
마차의 주차장인 지하 마구간은 버섯 모양의 머리가 있는 커다란 벽돌 기둥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아치형 천장을 보며 기둥 사이를 걷다 보면 동굴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 사진. ⓒ김혜경
양쪽의 대리석 기둥 사이로 난 중앙 계단을 오르면 누구라도 귀족이 된 기분이 든다. 계단 끝에는 카탈루냐 문장을 디자인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펼쳐져 있다. 살롱으로 가기 전에 머무는 공간이다.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다. 연회에 초대받은 사람은 명예로운 계단을 올라 살롱으로 들어간다. 계단을 오르기 전 오른쪽에 있는 방은 구엘이 살아 있을 때 사용하던 집무실이다. 2층 중앙 살롱은 가우디가 가장 공을 들여 만든 구엘 저택의 백미다. 홀은 천장까지 뻥 뚫려 있고 2층부터 4층까지 모든 방은 홀을 에워싸도록 배치되었다. 천장 맨 꼭대기에서는 지중해의 태양이 산란광으로 쏟아진다. 홀을 둘러싼 포물선 아치와 석회암 기둥들은 지중해의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 오열을 맞춰 자리한 시종들처럼 보인다. 어두워지면 옥상에 놓인 탑에 등불을 걸어 구멍을 통해 아래로 빛이 내려오게 했다.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것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구엘은 이곳에 사람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고 연주회도 열었으며 사제를 모셔다 미사를 드리기도 했다.
구엘 저택의 중심인 살롱으로 가는 계단. 초대받지 않은 사람은 더 오를 수 없고, 초대받은 사람은 여기서 매무새를 가다듬고 올라갔다. 맞은편에는 구엘이 사용하던 방이 있다. / 사진. ⓒ김혜경
2층 중앙 살롱 전경. 돔 천장에서 지중해의 은은한 빛이 내부로 쏟아져 들어온다. 천장 높이는 17.5m에 달한다. 이곳에서 파티와 모임은 물론 음악회와 미사 등이 이루어졌다. / 사진. ⓒ김혜경
중후한 교향곡 같은 집

살롱 왼쪽으로 돌아가면 남성들이 주로 모이던 접견실, 흡연실, 당구장 그리고 식당 등이 이어진다. 한쪽에 대대로 가족들이 살던 옛집과 왕래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한동안 두 채의 건물은 서로 연결되었다. 살롱 오른쪽으로는 로비를 지나 여성들이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파우더 룸이 자리해 있었다. 복도에 열린 문을 따라 남쪽 테라스로 나가면 건물 후면이 나타난다. 전면과 달리 후면은 매우 화려하다. 3층에는 구엘 부부의 침실과 거실, 이사벨과 자녀들의 방, 목욕탕과 화장실 등이 배치되었다. 각 방과 복도를 잇는 천장에는 고급 목재와 도금한 철을 이용해서 만든 격자무늬 장식이 방문객들의 눈을 부시게 만든다. 4층은 다락방으로 하인들의 방과 주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전시관으로 사용 중이다.
구엘 가족이 모여 미사를 드릴 때 사용한 공간. 정면 벽 가운데에는 성모 마리아상과 제단이 있었다고 한다. 여닫이문 양쪽 안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 사진. ⓒ김혜경
옥상에는 여러 모양의 굴뚝과 환기탑 20개가 놓여 있다. 재료도 유리, 대리석, 도자기, 벽돌 등 다양하다. 카사 비센스에서는 사각형 타일에 무늬를 입혀 사용했으나 구엘 저택에서는 타일을 조각내 붙여서 사용하는 트렌카디스 기법을 선보였다. 정중앙에는 사암을 쌓아 올린 기다란 탑 조형물이 보인다. 낮에는 지중해의 태양을 밤에는 등불의 빛을 실내로 전달하는 장치다. 맨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있고, 그 아래는 박쥐가 날개를 펼치고 있다. 카탈루냐인들에게 박쥐는 행운을 상징한다. 박쥐 날개 뒤에는 톱니바퀴가 달려 있다. 구엘의 경제적 성공을 상징하는 공장을 의미한다. 맨 아래 보이는 건 태양이다. 지중해의 태양을 건물 전체에 녹아들게 하는 이 모든 연결고리를 가우디는 이처럼 극적인 장치로 연출해냈다.
포도송이를 연상케 하는 이 굴뚝은 고흐가 사랑했던 불꽃 같은 나무 사이프러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가톨릭교회에서 사이프러스 나무의 열매는 영생과 불멸을 의미한다. / 사진. ⓒ김혜경
벽돌을 쌓아 올린 굴뚝 중앙에 돌탑이 보인다. 지중해의 태양을 천장을 통해 실내로 전달하는 통로다. 맨 꼭대기는 십자가, 그 아래는 박쥐와 톱니바퀴와 태양이 자리 잡고 있다. / 사진. ⓒ김혜경
카사 비센스가 경쾌한 왈츠 같은 집이라면 구엘 저택은 중후한 교향곡 같은 집이다. 구엘 저택을 둘러보며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을 떠올렸다. 무려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만들어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시골에서 태어나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헝가리 후작 에스테르하지가(家)에서 30년 넘게 궁정악장으로 일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유럽 최대의 영지와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에스테르하지가의 후원이 없었다면 그가 만든 수많은 명곡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롱에서 빛의 세례를 받으며 발랄하면서도 격조를 갖춘 하이든의 교향곡 6번 ‘아침’을 들으면 구엘과 가우디 얼굴이 잔잔하게 스쳐 간다.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을 만나 불후의 명곡을 남길 수 있었던 것처럼 가우디 역시 구엘을 만나 ‘건축의 신’으로 불릴 만한 걸작을 빚어낼 수 있었다. 그 첫 단추였다고도 할 수 있는 구엘 저택은 가우디가 어떤 구애도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던 완벽한 실험실이었다.

유승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