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다비엔 스피어 들어서는데 K-팝 전용 아레나는 무산

[arte] 이동훈의 Digital eXperience아웃룩

문화 산업 발전에 대한 단상
[들어가며]

#1

작년부터 <한국경제>의 기획 기사 중 재미있게 보는 코너가 있다. 바로 '혈세누수탐지기' 코너다. 한경 기자들이 다양한 혈세 누수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공공 부문의 예산 집행에 대한 비효율성과 낭비를 지적하고 있는데, 최근에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 DOGE(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가 미국에서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혈세누수탐지기'라는 기획 기사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획 기사를 읽다 보면, 아래 기사와 같이 공공 부문이 투자한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시설 관련 기사를 볼 수 있는데, 사실 공공 부문이 운영하는 문화 시설은 매년 국정감사때마다 혈세 낭비와 저조한 실적으로 인해 질타를 받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①] '2000억' 쏟아부었는데…"주변 사람들 아무도 몰라요" 처참 (24년11월 기사)

▶▶▶[관련 기사②] "부산에 이런 곳이?" 감탄했는데…700억짜리 수영장 될 판 (24년 8월 기사)

그런데, 필자는 문화 및 콘텐츠 업계 종사자로서 단순히 혈세 낭비의 문제를 넘어 자원 분배의 효과 관점에서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투자한 문화 시설이 전체 문화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인력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는지 그리고 해당 서비스 모델이 해외로 확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2

CJ그룹이 경기도와 협약을 맺고 고양시 10만평 부지에 세계 최초 6만석 규모의 K-팝 전용 아레나와 K-콘텐츠 종합 복합단지를 만들려던 CJ라이브시티 프로젝트가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작년에 무산됐다. K-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허브로서 전 세계 팬들을 유치하고,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확산과 대한민국의 문화 산업을 선도할 목적으로 추진했던 CJ라이브시티 사업이 좌초된 것이다.

CJ라이브시티 사업이 무산된 시기에 아랍에미리트(UAE)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스피어(Sphere)'를 아부다비에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스피어는 미국 미디어 회사인 스피어엔터테인먼트가 만든 복합 문화 시설이다. 첫 번째 스피어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다.

아부다비 문화관광부(DCT)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아부다비를 세계적인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중심지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투자는 아부다비의 국영기업 또는 무바달라(Mubadala) 같은 국부펀드가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라스베가스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아랍 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스피어'가 들어설 예정이다 / 출처. thesphere.com
라스베가스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아랍 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스피어'가 들어설 예정이다 / 출처. thesphere.com
#3

현재 디스트릭트는 제주, 부산, 강릉, 여수에 아르떼뮤지엄 구축을 마무리하고, 아르떼뮤지엄의 해외 확산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두바이, 청두 3곳에서 아르떼뮤지엄을 운영하고 있고, 올해 3분기에 세계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 뉴욕에도 오픈할 예정이다. 해외 지점마다 흥행 실적은 조금씩 다르지만 라스베이거스 아르떼뮤지엄의 경우 오픈 이후 1년 정도 지나면서 목표로 했던 모객 숫자를 달성했다. 올해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만 350억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해외 사이트라 투자와 운영비용이 많이 들지만 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4개 아르떼뮤지엄의 매출을 가볍게 뛰어넘는 숫자다.

협소한 한국 내수 시장으로 인해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숙명적으로 'go global'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도전을 했지만, 민간기업 특히 중소기업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반면 한국에서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축적된 지적 자본이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안에 대한 단상]

필자가 정책 전문가가 아닌 상황에서 위와 같은 문제에 대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안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며, 필자의 영역 밖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안을 모색함에 있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국내외 몇 가지 사례를 공유하고자 한다.

벤처캐피탈(VC)산업과 모태펀드

벤처캐피탈(VC)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모태펀드를 조성해 민간 투자를 유도하고 시장 안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태펀드가 펀드 규모의 30~50%를 출자할 경우, 민간 투자자(은행, 보험사 등)의 투자 유치가 용이하며 투자 리스크가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펀드 운용사가 운용을 해서 목표 수익률(IRR)을 초과했을 경우, 일정 비율의 성과보수(인센티브)를 가져갈 수 있어 VC업계의 투자 성과 창출에 대한 강력한 동기 부여를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메리어트 호텔의 위탁 경영 방식

글로벌 호텔 업계 1위인 메리어트 호텔은 직접 호텔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방식(Owned 방식) 이외에 위탁 경영 방식(Managed 방식)으로도 운영하고 있다. 호텔 투자자 또는 디벨로퍼(developer)가 호텔에 투자하고 메리어트는 브랜드 라이센싱•핵심인력 파견•인력 교육•예약 시스템 제공 등을 통해 퀄리티 매니지먼트를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경우, 메리어트 호텔은 관리 수수료(매출액의 일정 비율)와 인센티브(영업이익의 일정 비율)를 받는다. 자산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소유 없이 유무형의 핵심 지적 자산을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이로 인해 코로나19 사태 같은 충격에도 리스크를 상당 부분 회피할 수 있었다.

Reverse-BTL(역임대형 민자사업)

작년 6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기획재정부에 전달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 개선과제'를 보면 미래성장 기반조성을 위해 대규모 투자자금이 필요한 첨단산업의 경우 미래전략기술 확보, 첨단산업 관련 생산시설 확충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간의 리스크를 분담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전략투자와 Reverse-BTL과 같은 새로운 투자 기법이 요구된다고 했다. Reverse-BTL은 정부가 토지 및 공장 설비에 선투자(Build)해 건설한 후 민간에 소유권을 양도(Transfer)하고, 민간은 공장 설비를 운영하며 일정 기간 임차료(Lease)를 정부에 지불하는 형태다. 기존 임대형 민자사업(BTL)을 뒤집는 역(逆)임대형 민자사업(Reverse-BTL) 방식을 말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Reverse-BTL 방식은 첨단산업 뿐만 아니라 문화 산업의 육성과 미래 성장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정말 필요한 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업들의 자본이 취약해 대규모 문화 시설 투자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성 보다는 상업성이 중요한 공공 문화 시설의 경우, 정부 주도의 시설 투자와 민간 주도의 위탁 운영이 결합된다면 민간의 창의성과 혁신을 통해 정부 투자에 대한 성과를 높일 수 있다. 동시에 문화 기업들의 지적 자본 및 경험의 축적을 통해 이들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지속 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문화 기업에 위탁을 맡긴 사업에서 정부가 목표로 하는 기준(ex. 투자 원금 상환, 목표 수익률 달성 등)을 충족할 경우, 민간 기업에게도 추가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 민간 부문의 창의성과 역동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협소한 내수 시장으로 인해 해외 시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숙명인 한국 기업들에게 한국에서 문화 시설을 운영하면서 축적된 IP와 경험, 그리고 해외 고객들이 크레딧 체크를 위해 한국을 방문 시 실체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문화 기업들의 해외 진출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실제로 작년에 카타르 문화부에서 당사가 운영하는 아르떼뮤지엄을 직접 방문했다. 이후 당사는 카타르 문화부로부터 카타르 내셔널데이 이벤트 전시 공간 구축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다.

[끝맺으며]

필자는 2023년 겨울에 아부다비 정부가 주최한 Creative Workshop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해당 워크샵은 전 세계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대하여 'Livable Abu Dhabi, Lovable Abu Dhabi'라는 주제로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하고 미래의 아젠다를 제시하는 자리였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코로나 기간 동안 글로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오징어 게임>, <기생충>, BTS, 블랙핑크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K-컬쳐)에 큰 관심을 보였고, 이런 문화 콘텐츠를 만든 한국의 저력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Abu Dhabi Creative Workshop 현장 모습 / 제공. 이동훈
이처럼 우리는 전 세계인들이 궁금해하고 부러워할만한 문화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의 발전과 여행 인구의 증대로 인해 문화적 확산과 교류가 더 빨라지고 중요해지는 이 시기에 이 역량을 통해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특히 트럼프 2기를 맞아 관세로 인해 무역 장벽이 높아지고 제조업의 수출이 어려워지는 지금의 상황에서, 문화 산업을 국가 성장 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의 투자와 민간의 창의성이 결합된 새로운 민관 협동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성과에 따라 민간기업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 신규 투자를 위한 자본의 축적이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수익성과 공공성의 조화가 중요한 문화 산업에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포용적 성장과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이뤄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동훈 디스트릭트 공동 창업자•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