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한덕수 차출론'…민주당 재탄핵 '만지작' [이슬기의 정치 번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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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안팎에서 출마 촉구…'한덕수 차출론' 현실화
'반이재명' 상징·경제통·호남 출신…대안으로 부상
'재탄핵'이 정국 변수…사퇴 및 출마 명분 제공할 수도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며칠 사이 당 밖에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한 출마 촉구가 이어졌습니다. 전날 국민의힘 호남지역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국회를 찾아 한 총리의 출마를 공개적으로 촉구한 데 이어, 이날은 대학생 단체인 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회(신전대협)가 같은 요구를 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은 "전북 출신의 한덕수는 그 자체가 '컨벤션'"이라며 "참여정부부터 지금에 이르러 진영논리에 매몰되지 않은 한 대행에게 대한민국의 위기 앞, 조용한 결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주장했습니다.
당내에서도 한 총리가 공개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 대행 대선 출마가 적절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권 원내대표는 "경쟁력 있는 후보가 우리 당 경선에 많이 참여하는 것은 컨벤션 효과도 높이고, 국민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게 돼 나쁘지 않다"고 했습니다.
박수영 의원도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높은 경제 파고를 넘으려면 통상교섭본부장과 주미대사까지 역임한 한 총리가 최적"이라며 출마를 촉구했고, 김도읍 의원도 공개적으로 한 총리에게 경선 러브콜을 보내며 "지금처럼 통상과 경제 이슈가 핵심인 시기에, 한덕수 총리 같은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가능성 '0'인 줄 알았는데…"풍요 속 빈곤"에 결국 수면 위로
사실 한 총리 차출설은 여의도에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한덕수 총리가 10년만 젊었더라면..."이라는 말은 12·3 계엄 직후부터 당내 일각에서 나오기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는 현실성 없는 '정치적 상상력'의 영역으로 치부됐습니다.
그러나 조기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상황은 급변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덕수 출마론'이 진지한 토론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한덕수 차출론'이 힘을 얻는 배경엔 국민의힘 난맥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출마 의사를 밝힌 후보자는 모두 10여명에 달하지만, '1강'으로 꼽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대적할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들 후보군을 두고 "그야말로 풍요 속 빈곤 아니냐"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후보들이 '참신함이 없다'라거나, '경험이 없다'라거나 하는 뚜렷한 한계를 보이는 것과 비교하면, 한 총리는 여러 정치적·상징적 무기를 갖춘 인물로 평가됩니다. △민주당의 탄핵 대상이었던 만큼 '반이재명 전선'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기각으로 복귀한 만큼 정당성 논란에서 자유롭다는 점 △호남 출신이라는 상징성이 있다는 점 △미·중 관세 전쟁의 위기 상황에서 경제통이라는 점 등이 강점으로 꼽힙니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에 '한덕수'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8~10일 전국 성인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에서, 한 총리는 대선 후보 선호도 2%를 기록하며 처음 등장했습니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층 내에서는 6%를 얻으며 오세훈 서울시장과 동률을 이뤘습니다.
한 총리의 '대선 출마' 여부를 가를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민주당의 탄핵 재추진 여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국정을 책임지는 총리를 대상으로 또다시 탄핵이 추진된다면, 이는 곧 사퇴 명분이자 출마의 디딤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재탄핵이 오히려 한 총리를 대선판으로 떠미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와 관련 "어제까지는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맞아떨어지는 퍼즐들이 꽤 있더라"라며 "민주당이 어떤 정무적 판단을 내릴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