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오락가락 관세에 피 말리는 중소기업들

미국발 불확실성에 수출 중단
대미 협상에 따라 기업 운명 결정

황정환 중소기업부 기자
“정책이 매일 바뀌니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먼저 움직였다가 낭패만 볼 수 있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현지 분위기는 어떻냐’는 기자의 질문에 베트남 생산 기지를 둔 전자부품 업체 A사의 임원은 허탈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A사는 지난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상대로 46%의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하자 중남미 등 상대적으로 관세가 낮은 지역으로 대미 수출 거점을 옮기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1주일 만인 10일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기로 결정하면서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달 들어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은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베트남에서 과자 포장지를 비롯한 비닐 제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중소기업 B사는 16% 관세 부과가 발표된 3일 이후 미국 내 바이어들의 주문이 완전히 끊겼다. 극적으로 당분간 관세 부과가 유예됐지만 후폭풍은 여전하다.

다시 바이어들에게 연락했더니 예전만큼 물량을 주문하긴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는 게 B사의 설명이다. 이 회사 대표는 “국가별 협상 결과에 따라 관세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미국 바이어 상당수가 일단 쌓아둔 재고를 소진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한다”며 “매출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과연 버티면 나아질지 불확실한 게 더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기업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게 불확실성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종잡을 수 없는 관세 행보에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도 대응책을 내놓지 못해 기업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상호관세 부과를 기점으로 나름의 대응 전략을 짠 기업들도 미국이 예상보다 빠른 관세 유예 조치를 내놓자 모든 걸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사업 계획 자체를 짤 수가 없으니 모든 기업 활동이 마비되는 양상이다.

46% 관세율이 부과된 베트남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서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10년간 해외에 법인을 설립한 국내 기업만 3만104곳에 달한다. 이 기업들이 베트남과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무너지면 우리 경제에도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 당장 한국엔 46%보다 훨씬 낮은 25%의 관세율이 매겨졌지만 90일 이후 과연 누가 웃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한국과 베트남에서 스마트폰 부품을 생산하는 중견기업 C사 대표는 “그저 천수답처럼 트럼프 입만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나라보다 더한 관세 폭탄을 맞게 될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이런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합쳐 최상의 협상 결과를 끌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