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펄펄 끓는 '돈 주앙'…관객 심장에도 불붙인 플라멩코 [리뷰]
입력
수정
뮤지컬 '돈 주앙' 프렌치 오리지널 리뷰
19년 만 내한…서울 이후 대구·부산 찾아
'사랑의 저주' 걸린 돈 주앙 스토리
세비야 감성 한껏 살린 플라멩코 '압권'

프렌치 오리지널 뮤지컬 '돈 주앙'이 19년 만에 내한해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돈 주앙'은 17세기 스페인 소설 속 주인공이자 동침한 여자가 1003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져 오는 호색한 돈 주앙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다. 정혼녀까지 버리고 수많은 여성을 유혹하며 쾌락에 젖어 사는 돈 주앙이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돈 주앙은 두려운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여성은 물론이고, 아버지와 신까지 모든 걸 가볍게 여기고 무시했다. 그는 존경받는 기사의 딸을 유혹하기에 이르렀고, 기사와 결투를 벌여 기사의 목숨까지 빼앗았다. 기사의 죽음과 함께 내려진 저주는 돈 주앙을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했다. 기사의 저주는 바로 사랑.

이를 두고 극본과 작곡을 맡은 펠리스 그레이는 "이제껏 다뤄온 방식과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하고 끝난 그가 진짜 사랑을 알게 되면 어떨까 싶었다.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낌으로써 고통받는 모습을 그려보자고 생각했다. 진정한 정열을 그려보기로 한 거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결말도 다르고, 지금까지의 악에 대해 속죄하는 결말로 가게 됐다"고 밝혔었다.
고전 이야기인 만큼 서사가 다소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산발적으로 뻗어나가는 전개가 없어 오히려 깔끔하게 인물에게 집중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장면 간의 얼개도 느슨한 편인데, 딴 길로 새어 나가는 법이 없어서 돈 주앙의 심리나 모든 인과 관계를 꼼꼼히 따지며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극을 따라갈 수 있다.
부족한 개연성을 꽉 채우는 건 무대 예술이다. 장소적 배경이 되는 세비야의 정열이 물씬 느껴지는 음악과 퍼포먼스가 150분 내내 관객들의 심장을 뛰게 한다. 프랑스 뮤지컬 특성상 '송스루(대사 없이 전곡이 노래로 구성된 형식)'로 진행되는데, 기타·퍼커션·캐스터네츠가 만들어 내는 라틴풍 사운드와 댄서들의 힘 있는 플라멩코 탭핑이 공연장을 단숨에 스페인 세비야로 옮겨놓은 듯한 기분을 줬다.
플라멩코라는 장르 안에서도 다채로운 퍼포먼스를 완성해 냈다. 각 잡힌 기사들을 표현한 남성적인 군무부터 경쾌하고 유려하게 표현되는 여성 댄서들의 안무, 그리고 남녀가 함께 어우러진 격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플라멩코까지 눈과 귀가 동시에 즐거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떠한 연출보다도 강력한 '맨몸 무기'다.
펠릭스 그레이는 "LED 조명 등의 기술을 활용해 공연에서 감정이 더 풍부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조될 수 있도록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 안무가 카를로스 로드리게즈는 "심장 박동 소리, 외치는 소리가 플라멩코의 매력"이라면서 "강렬한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스텝을 더 강하게 밟는다든지 안무의 에너지를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돈 주앙' 프렌치 오리지널 내한 공연은 1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18~20일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계명아트센터, 25~27일 부산 부산시민회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