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이거나, 최악이거나… 매킬로이 '운명의 날' 밝았다 [여기는 마스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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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첫 메이저 마스터스 토너먼트 FR
매킬로이, 그랜드슬램 완성 위한 마스터스 우승 도전
12언더파 2타차 선두… '숙적' 디섐보와 맞대결
"'나만의 버블'에서 앞을 향해 나아갈 것"

14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 열리는 대회 최종 4라운드에 매킬로이는 중간합계 12언더파 204타 단독 선두로 나선다. 1라운드에서 두번의 더블보기를 범하며 아쉬움을 남겼던 그는 2·3라운드 연속 6언더파를 몰아치며 그린재킷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보였다. 특히 3라운드에서는 2번홀(파5), 15번홀(파5)에서 이글을 잡아내며 오거스타 내셔널 필드를 뜨겁게 달궜다.
그런데 상대가 얄궂다. 하필이면 브라이슨 디섐보(32·미국). LIV골프의 간판 스타이자, 지난해 US오픈에서 매킬로이에게 뼈아픈 역전패를 안긴 선수다.
두 선수 모두 압도적인 장타로 유명하다. 매킬로이는 175cm의 작은 체구에도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몸, 완벽한 스윙 시퀀스로 폭발적인 장타를 선보인다. 전날 3라운드에서 그는 드라이버로 평균 340야드를 때렸다.
디섐보는 남자 골프에 '봄 앤 가우지' 바람을 불어넣은 주인공이다. 드라이버로 최대한 멀리 보낸 뒤 웨지나 숏 아이언으론 그린을 공략하는 전략이다. 몸을 크게 불려 스윙스피드를 극단적으로 늘리는 등 여러 실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여러 부상이 이어지면서 지금은 몸이 다소 슬림해졌지만 장타는 여전하다. 3라운드에서는 매킬로이보다 좀 덜 치긴 했지만, 1.~3라운드 평균으로는 329.83야드로 매킬로이(324.5야드)를 살짝 앞선다.

인생을 건 18홀을 앞두고 매킬로이는 평소와 같은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는 3라운드를 마친 뒤 "여전히 나에겐 가야할 길이 있다"며 "(내일) 조금 소란스럽고 시끄러울 것 같지만, 지난 3일간 해온 것처럼 나만의 작은 거품에 빠져 고개를 숙이고 매 샷에 다가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부담감이 적지 않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번주 경기 중에도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야디지북에 적어둔 말들을 수시로 들여다봤다고 한다. 어떤 말인지 소개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그저 상투적인 주문(mantra)"이라고 말을 아꼈다.
아픈 기억은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특히 작년 US오픈 최종라운드에 대해서는 "다행히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2011년, 4타 차 선두로 나서 그린재킷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가 놓쳤던 때에 대해서도 "오래전이라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심지어 두번의 더블보기로 아쉬운 플레이를 했던 이번 대회 1라운드에 대해서도 "그것은 이미 사라진 일이다. 그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회 당일 아침에도 평범한 일상으로 채울 계획이다. 그는 "오늘(3라운드)도 아침에 프리미어 리그 축구를 조금 봤고, 포피(딸)와 함께 영화 '주토피아'를 봤다. 그리고 티타임 3시간 전에 골프코스에 도착해 운동과 워밍업 등 준비를 했다. 내일도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생 최고의 라운드, 혹은 최악의 라운드를 앞두고 그가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무엇일까. 바로 디지털 디톡스다. 그는 "이번주 가장 잘하려고 노력한 한가지는 전화를 꺼두고 다른 일을 하려고 노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그간 끈질기게 매킬로이의 구애를 뿌리쳐왔다. 2011년 4타 차 선두였던 그를 주저앉혔고, 최근 2년간은 커트탈락, 혹은 중위권의 성적에 머물게 했다. 먼길을 돌아 여전히 더 뜨겁게, 하지만 이제는 더 침착하게 구애하는 매킬로이의 손을, 이번에는 오거스타 내셔널이 잡아줄까. 운명의 날이 시작됐다.
오거스타=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