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라는 저주에 갇힌 어머니

연극 '그의 어머니'

강간 혐의로 가택연금된 17세 소년 매튜와
형량을 낮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 브렌다

아들을 향한 사랑과 범죄자를 향한 혐오가 뒤섞여
'강간범의 엄마'라는 낙인으로 무너져가는 모습 그려

사랑, 절망, 두려움 뒤섞인 복잡한 어머니의 마음
김선영의 파격적인 열연으로 생명력 얻어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4월 19일까지
가족, 사랑, 도덕, 윤리.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들이다. 이 중 하나도 포기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살면서 이들이 서로 부딪히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해답이 없는 고민에 빠진다.

연극 '그의 어머니'는 이런 딜레마에 빠진 한 어머니가 등장한다. 작품은 캐나다의 한 평범한 가정집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브렌다 카포위츠는 워킹맘이다. 그는 아침밥을 준비하고,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쓰는 8살 막내아들 제이슨을 타이르면서 출근 준비까지 하느라 정신없는 아침을 보낸다.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는 분주한 평일 아침의 모습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 집의 한쪽에는 불편한 존재가 맴돈다. 이 와중에 방에서 나오지 않는 첫째 아들 매튜다. 17살 고등학생 매튜는 하룻밤 사이에 세 명의 여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가택 연금된 상태다.

브렌다는 자기 아들이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불편하다. 자기 자식이지만 얼굴을 마주하기도 어색하다. 브렌다는 아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마주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하지만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다. 동시에 어머니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아들의 형량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집은 현관문이 열릴 때마다 혼란이 몰아친다. 매튜의 강간 사건은 언론에 대서특필돼 구경꾼과 언론사들이 카포위츠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요하게 감시하고 있다. 한 명이라도 집을 나서는 순간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이고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마치 동물원 우리 안에 사는 동물처럼 브렌다와 제이슨까지 집에 갇혀 구경거리가 된 꼴이다.
자식을 향한 사랑과 범죄를 저지른 아들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브렌다는 점점 수렁에 빠진다. 언론은 브렌다를 '강간범의 엄마'로 낙인해 그녀의 삶을 샅샅이 까뒤집어 놓는다. 아직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둘째 아들마저도 사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상이 무너지고, 매튜의 재판도 점점 희망이 사라지자 브렌다는 사랑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매튜에게 "증오, 너는 그것 빼고 모든 걸 나한테서 강간해서 빼앗아 갔어"라며 모진 말을 쏟아내기까지 한다.

복잡하고 양면적인 감정에 휩싸인 어머니의 모습은 브렌다 역을 맡은 김선영의 열연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1막 마지막 장면에서 이성의 끈을 놓고 기자들 앞에서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는 연출은 원작에는 없지만 김선영의 의지로 빚어진 장면이다. 사랑과 희망이 무너진 인물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모습을 처절하고 파격적으로 그린다.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 아들을 향한 사랑과 혐오감이 뒤섞인 감정 등 복잡 다변한 엄마의 마음을 미묘하게 오가는 김선영의 연기가 관객을 홀린다.
작품은 범죄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끔찍한 죄를 저지른 아들과 그를 보호하는 어머니를 어떤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거나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범죄자의 어머니라는 십자가를 지고 고통스러워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 안에 인간 본성의 이중성, 가족애, 범죄자에게서도 인간성을 찾는 휴머니즘, 얄팍하고 자극적인 가십거리를 위해 피라냐 떼처럼 달려드는 언론에 대한 비판까지 담았다. 관객 각자가 보고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될 수 있는 연극이다. 공연은 오는 19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