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혼란에 中 버티기까지…꼬이는 트럼프 관세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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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스마트폰 관세 '오락가락'

◇ 오락가락 관세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취재진에게 반도체 관세를 “머지않은 미래에 시행할 것”이라며 반도체 관세율은 “다음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달 11일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PB)과 백악관이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관세가 면제된다고 밝혀 언론에서 ‘관세 전쟁에서 후퇴했다’는 반응이 나오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등에 대한) 관세 면제는 전혀 발표된 바 없다”고 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에 상호관세를 적용하지 않는 대신 수입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처럼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기업과 소비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관세 정책을 주먹구구식으로 밀어붙여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는 10일 57개국을 대상으로 10~49% 상호관세를 발효했다가 국채값이 폭락(국채 금리 급등)하는 등 시장이 충격을 받자 13시간 만에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했다. 그러면서 이 기간 기본관세 10%만 부과하겠다고 했다. 그 대신 미국에 보복관세를 매긴 중국에만 상호관세를 125%로 올렸다. 지난 2, 3월 펜타닐 원료 수출을 이유로 부과한 20% 추가 관세까지 합하면 중국에는 145% 추가 관세를 매긴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시장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설립자인 레이 달리오는 이날 한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미국 부채 증가가 새로운 일방적 세계 질서를 초래하고 있다”며 “현 상황을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경기 침체보다 더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로 “통화 질서 붕괴, 정상적 민주주의 방식이 아닌 내부 갈등, 세계 경제에 매우 혼란을 주는 국제 분쟁, 경우에 따라선 군사 충돌”을 언급했다. 실제최근 달러화 가치와 국채값이 폭락하자 시장에선 “미국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는 지적이 나왔다.
◇ 예상 밖으로 강하게 나오는 中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도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의 ‘펜타닐 관세’에 맞서 미국산 석탄, 원유, 농산물 등에 10~15% 보복관세를 매긴 데 이어 125% 상호관세에 대해선 똑같이 미국산 제품에 125% 보복관세로 맞불을 놨다. 지난 4일 발표한 희토류 수출 중단도 강행했다. 희토류는 자동차, 항공·우주, 반도체, 무기류 등 첨단 제품 제조에 없어선 안 되는데 중국이 시장의 90%가량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위안화 평가절하에까지 나서며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이다.미국이 중국을 협상장에 끌어내기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대화 계획을 묻는 질문에 “당장은 아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시 주석과 만날 것”이라며 “그는 내 친구이고 나는 그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결과는 딴판인 것이다.
그동안 공개적인 발언을 자제하던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4일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3개국 순방을 시작하며 첫 방문지인 베트남에서 현지 기고를 통해 “무역전쟁과 관세전쟁에는 승자가 없고 보호주의에는 출구가 없다”고 밝혔다. 11일 베이징을 찾은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의 회담에선 “어떤 부당한 억압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중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에 비해 내수 비중이 높아져 무역전쟁에서 버틸 체력이 세졌다. 또 관세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로 미국인의 반발이 커지면서 장기전으로 갈수록 중국이 유리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애덤 포즌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은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에서 베트남전에 필적하는 일을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베트남전 수렁에 빠진 것처럼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뉴욕=박신영/베이징=김은정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