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교 정상화 60년, 한·일 관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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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반성은 여전한 숙제
한·미·일 협력 속 새 틀 찾아야
김경민 한양대 명예교수

1991년 독일과 일본의 전후 배상 비교를 연구하기 위해 무더운 여름 동안 베를린과 뉘른베르크, 독일 외무부 등을 방문하며 조사했다. 현지에서 만난 헬렌이라는 유대인 여성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감금돼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던 중 독일의 항복으로 구사일생 목숨을 건졌다. 이후 독일은 헬렌뿐만 아니라 자국의 박해를 받은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보상에 나섰다.
헬렌은 대학에 다니다가 끌려가는 바람에 전문 교육을 받을 기회를 잃었고, 이에 따라 당시 기준으로 매달 130만원가량의 보상금을 지급받고 있었다. 또한 관절염 치료를 위해 2년마다 3주간 온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받았다.
이에 비해 일본은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에 앞장서고 있으며, 한국 침략에 대한 역사적 사실도 교과서에 모호하게 서술해 여전히 한국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심지어 독도마저 고등학교 교과서에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비양심적인 태도를 지속하고 있다. 일본이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한다면 한국인들은 과거의 원한을 잊고 관계 회복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침략의 역사를 학생들의 교과서에서 삭제하거나 축소하고 있으니, 어느 누가 일본의 태도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다행히 한국은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고, K팝을 비롯한 한류 문화는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의 일반 국민이 한국에 호감을 가진 점은 긍정적이지만, 한국이 더욱 강한 경제력을 갖춘 나라가 돼야 일본이 반성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와세다대와 도카이대 등에서 객원교수로 강의하고 연구하면서 체감한 일본의 민족성은 강한 나라에는 고개를 숙이고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는 업신여기는 태도가 있다는 점이었다. 진정성 없는 일본의 반성을 기다리며 6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일본의 태도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한국이 강대국으로 거듭날 때, 과거 우리 선조들이 겪은 고통과 아픔을 어느 정도 위로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했다. 전임 조 바이든 정부와 공통된 인식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관계를 긴밀히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협력 체제 안에서 한·일 관계가 견고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일본은 한때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G2 국가로 평가받기도 했으나, 이제는 세계 질서가 변화해 미국과 중국이 G2 체제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미국은 자연스럽게 한·미·일 삼각 협력의 틀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협상을 잘 이끌어 적정 수준에서 조율한다면 한국의 안보와 경제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제 한·일 관계는 한·미·일 협력 구조의 일환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