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인간적인, 보다 자연에 가까운 디자인, 2025 살로네 델 모빌레

밀라노 디자인 위크 현장을 가다 ②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시작점,
트렌드를 조망하기 좋은 중심축
2025년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Milano)’는 4월 8일부터 13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로 피에라(Rho Fiera)에서 개최됐다. 전시 면적 16만 9,000㎡ 규모에 2,100개 이상의 가구 디자인 브랜드들이 참가했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전 세계 37개국에서 온 업체들이 모두 24개 파빌리온으로 구성된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올해는 조명 비엔날레 ‘유로루스(Euroluce)1)’가 열리는 해로, 25개국에서 모인 300개 이상 조명 브랜드가 3만 2,000㎡ 규모의 공간을 빛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①] 도시 전체가 거대한 쇼룸…세계 디자인 수도로 변신한 밀라노
Euroluce, Ferro Luce, Pav. 06 – D51, Fiera Milano, Rho, Salone del Mobile.Milano 2025 / 사진. ©Diego Ravier
Euroluce, Ferro Luce, Pav. 06 – D51, Fiera Milano, Rho, Salone del Mobile.Milano 2025 / 사진. ©Diego Ravier
브랜드 철학을 보여주는 무대

살로네는 단순한 제품 전시회가 아니다. 브랜드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철학과 방향성을 보여준다. 전 세계 브랜드가 총집결하는 행사인 만큼, 브랜드의 현재 위상과 미래 비전을 가늠할 수 있다. 매년 개최되는 행사지만 매번 다른 질문과 실험이 담긴다. 그리고 실험의 장이 ‘세계 디자인의 수도’ 밀라노라는 점은 큰 의미를 지닌다. 매년 4월, 디자이너와 업계 관계자들은 디자인 트렌드를 읽고 영감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올해 살로네의 캠페인 슬로건은 ‘인간을 향한 생각 Thought for Humans’이었다. 전시관 곳곳에는 "보다 인간적인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한 흔적들이 보였다. 결국 디자인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기술이나 미감에 쏠리는 것을 경계한 브랜드들이 눈에 띄었다.
Euroluce, Axolight, Pav. 02 – B04, Fiera Milano, Rho, Salone del Mobile.Milano 2025 / 사진. ©Diego Ravier
Euroluce, Axolight, Pav. 02 – B04, Fiera Milano, Rho, Salone del Mobile.Milano 2025 / 사진. ©Diego Ravier
자연을 닮은 컬러와 소재, 인간을 닮은 형태의 가구

컬러 트렌드는 자연을 닮은 아이보리, 샌드, 라이트 우드 등이 주를 이뤘다. 소재 역시 가죽보다 패브릭과 우드, 그중에서도 따뜻한 느낌이 부각되는 소재들이 주목받았다. 형태적으로는 자연의 순환을 모티브로 한 곡선 디자인과 인체의 움직임이나 자세를 고려한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이 다수 등장했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브랜드들도 많았다. 이는 환경 오염과 소비주의에 대한 시대의 경각심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Knoll은 사람의 몸을 연상시키는 조각적인 곡선의 소파를 선보였다. Arper는 천연 광물에서 추출한 색과 재활용 소재로 만든 지속가능한 가구를 보여줬다. Kartell은 실용적인 디자인과 밝은 컬러를 기반으로, 자연과 인간의 곡선을 닮은 소파와 테이블을 제안했다. 그리고 올해도 실용적인 가구를 앞세웠다.
Arper 'Spaces to Inspire' 부스 / 사진출처. Arper 홈페이지
자연과 가까운 조명, 감성을 자극하는 빛의 언어

살로네 내 유로루스관은 2년에 한 번 열리는 행사인 만큼, 관람객들이 유독 밀집했다. 몇몇 조명 브랜드들은 ‘빛’을 소재로 인간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는 데 집중했다. 눈의 피로를 덜고, 감성을 끌어올리는 부드러운 색감, 풀, 나무, 바람, 구름, 행성 등 자연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스페인 브랜드 VIBIA는 인간 중심, 자연 유기적 감성을 키워드로 신제품을 선보였다. 나뭇잎과 씨앗 등 자연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 흥미로웠다. 101 Copenhagen은 행성을 연상시키는 곡선 형태와 소재의 실험이 엿보였다.

여전히 플로스(Flos)와 아르떼미데(Artemide)와 같은 업체들은 혁신적인 조명을 선보이며 업계를 선도했다. 플로스는 ‘빛의 조각(Scultura di Luce)’을 주제로, 조명의 조형성과 감성을 극대화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올해도 기술과 디자인, 공간 경험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대표 조명 브랜드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아르떼미데는 금속판과 유리병 형태를 조합한 기술 기반의 감성 조명을 선보였다.
Flos 쇼룸 / 사진. ⓒGianluca Bellomo
Moooi는 조명을 통해 예술 작품 수준의 조형미를 선보였고, Swarovski와 Terzani는 조명이 화려한 장식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화려하게 증명했다.
Moooi의 조명과 소파 / 사진제공. MOOOI
KR 한국 브랜드의 밀라노 데뷔

한국 브랜드 중에는 유일하게 일광전구(ILKW)가 밀라노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국내에선 MZ세대 사이에서 눈사람 모양의 감성 조명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브랜드. 1962년 백열전구 제조회사로 시작했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2020년대 조명 디자인 브랜드로 전환에 성공했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시그니처인 ‘SNOWMAN FAMILY’ 컬렉션을 선보였고, 유럽 디자이너, 리테일러, 바이어들의 호평을 얻었다.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든든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ILKW의 'SNOWMAN22' / 사진제공. ILKW
김시연 일광전구 이사는 “K–감성 조명의 독특한 매력이 유럽에도 통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점이 가장 큰 성과다. 세계적인 조명 브랜드들의 '희소성 추구 전략'에서 인사이트도 얻었다. 일광전구만의 매력을 유지하되 제품 독창성을 더 끌어올리는 방향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밀라노=조민선 아르떼 객원기자
1) 2년마다 홀수 해에 살로네 전시관 내에서 개최되는 조명 박람회. 짝수 해에는 주방 용품 박람회인 유로쿠치나가 열린다.

▶ 1부 : 도시 전체가 거대한 쇼룸…세계 디자인 수도로 변신한 밀라노
▶ 3부 : AI와 핸드메이드 사이…MZ 디자이너들이 해석한 장인정신
▶ 4부 : 티팟의 패션화, 명품 브랜드의 북클럽…밀라노서 눈길 끈 혁신적 시도들
▶ 5부 : 미켈란젤로 피에타 오마주한 '마더'…'빛의 도서관' 지은 에스 데블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