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지 못한 노래하는 침팬지, 로비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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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쇼맨,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의 뮤직 판타지수업이 끝나면 팥빙수 두 그릇씩을 먹고 집에 오던 즐거움을 제외한다면 내 초등학교 시절 ‘길티 플레져’(죄책감을 동반하는 즐거움)는 ‘테이크 댓’이었다. 5인조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한 명의 보컬이 대표하는 그들의 노래는 (뉴 키즈 온더 블록의 B 버전 정도로 생각하던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내게 한 치의 부족함도 없는 천상의 음악이었다. 일본에서 고모가 보내준 나의 첫 소니 워크맨으로 들었던 음악도 테이크 댓의 'Relight my fire'였다.
영화 리뷰
무대에서 공연하는 동안
'훈련된 침팬지'처럼 느낀
테이크 댓의 '로비 윌리엄스'
[Take That - Relight My Fire (Official Video) ft. Lulu]
그러나 세월이 흘러 누가 알았겠는가. 테이크 댓의 중추이자 원 앤 온리 보컬 게리 발로우가 아닌 병풍 댄서 정도로 기억했던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 Robert Peter Williams)가 더 큰 뮤지션이 될 운명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에 개봉한 <베러맨>(마이클 그레이시 연출)은 로비 윌리엄스의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판타지 뮤지컬로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는 어린 ‘로버트’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시절부터 시작된다. 밝은 성격의 로버트는 늘 의기양양하고 때로는 허세도 부리는 소년이지만, 사실상 그는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다. 적어도 축구로 일상을 연명하는 촌 동네 친구들 시선에서는 그렇다. 친구들의 멸시를 피해 로버트가 파고들었던 곳은 할머니의 품이다. 할머니는 로버트와 감자칩 한 봉지를 사이에 두고 하루종일 텔레비전을 보며 깔깔거리는 둘도 없는 친구다. 물론 로버트의 삶이 텔레비전 앞에서 끝났다면 우리에겐 'Relight my fire'도 없고, 'Angels'(로비 윌리엄스의 싱글)도 없었을 것이다.
[Robbie Williams - Angels]
로버트가 16세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 밴드의 멤버를 영입하는 오디션이 열린다. 대단한 재주를 보이지도 못했지만, 로버트는 극적으로 신생 밴드 ‘테이크 댓’의 가장 어린 멤버로 발탁되고 밴드는 곧 영국을 너머 전 세계 차트에 군림하는 보이그룹으로 부상한다.
이야기의 구조로만 본다면 <베러맨>은 이제껏 만들어진 전기영화(biopic), 예컨대 <레이>(테이러 핵포드, 2004), <보헤미안 랩소디>(브라이언 싱어, 2018), <엘비스>(바즈 루어만, 2022) 등 뮤지션의 탄생과 흥망성쇠를 조명하는 이전의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시에 이러한 영화들이 만들어졌을 때 가장 주목받는 요소라면 뮤지션을 연기하는 배우가 얼마나 흡사한가, 혹은 얼마나 실제 뮤지션의 노래를 비슷하게 구현해 내는가 등의 이슈였을 것이다. 적어도 <베러맨>은 이 점에 있어서는 전례에 없는 방식으로 로비 윌리엄스를 재현한다. 바로 CG로 만들어진 ‘침팬지’를 통해서다.

침팬지 로버트의 모습은 그가 테이크 댓의 활동과 순탄지 않은 솔로 활동을 이어나가는 모습에서도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인간 사이에 섞인 침팬지의 모습만큼이나 로비 윌리엄스는 ‘타자’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들로, 친구들에게 따돌림받는 동네 아이로, 음악을 못하는 뮤지션으로 그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베러맨’이 되지 못한 채 더 나은 인간들 사이에서 공허하게 부유하는 존재였다.
<베러맨>은 음악 (전기)영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춘 영화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버전의 넘버들과 지금도 가슴 뛰게 하는 공연 실황들은 눈을 감고 영화를 봐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압도적인 즐거움을 준다. 윌리엄스 본인의 음성과 노래로 재현되는 침팬지 로버트는 영화의 화룡점정 그 이상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영화 '베러맨' 쇼타임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