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예술이다

[arte] 람혼 최정우의 이종접합

민주주의의 위기와 위기의 예술 - 1부

현대음악 거장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바이올린 협주곡 통해
'자유가 예술가들의 창조에
더 많이 기여하고 있는가'란 질문 던져
1937년 7월, 당시 독일의 나치(국가사회주의)는 뮌헨에서 ‘퇴폐미술전’을 열었다. 어떤 예술을 기념하고 추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토록 성대하고도 적극적으로 비난하고 배제하기 위해서만 열리는 전시는 그 이전에도 오늘날까지도 실로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그 전시에서 이른바 '퇴폐 예술(entartete Kunst)'로 규정된 것들은 우리가 현재 모더니즘 예술의 대표적인 사조들로 받아들이고 있는 다다이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입체파 등의 작품이었다. 역설적으로 나치가 ‘퇴폐 예술’로 정의했던 그 모든 예술은 이후 현대미술의 핵심적 수원이 되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때 나치의 예술관은 편협하고 부당했으며 예술은 그러한 억압적 규정을 이겨내고 끝끝내 예술만의 자유를 쟁취해 승리했다는, 단순한 ‘권선징악’의 영웅적 서사 같은 것이 아니다.
1937년 나치 퇴폐미술전 포스터.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1937년 나치 퇴폐미술전 포스터.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예술이다

사실 현재 우리 대부분은 보통 이러한 과거의 ‘반문화적’이고 ‘반달리즘적’인 전시가 어떻게 가능했는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젓곤 하지만, 우리 시대 또한 ‘퇴폐 예술’이라는 이름만 쓰지 않을 뿐 역시나 대다수 대중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예술의 형태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모든 시대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현재 우리에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예술이 오히려 너무 부족하다고. 무엇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하고 무엇이 정치적으로 정의로우며 무엇이 예술적이고 미학적으로 요구되는지에 대해 예민해야 할 우리의 감각 자체를 잃어버리고 있다고.

우리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다. 전 세계적으로 인류가 역사상 최선의 정치 체제라고 여기던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해 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비참과 이를 마주한 세계인의 고통 속에서 인류의 존속 자체가 위기로 내몰리고 있으며, 그 안에서 예술은 그 자체로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듯 보인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또한 예술의 위기가 되기도 하기에, 이 세계의 위기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술은 무력해 보인다.

이에 예술은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까.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알고 있지만 자주 잊어버리듯이, 예술은 대답의 형식이라기보다는 무엇보다 질문의 형태로 주어진다. 저 유명한 ‘퇴폐 예술’이라는 부정적 어법은 둘째치고서라도, 특정한 위기와 혼돈의 체제로부터 그러한 부정적 규정을 받을 수 있는 예술 자체가 오히려 부재하고 실종된 듯 보이는 현재의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가 더욱 신경을 곤두세워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예리하고 예민한 질문으로서의 예술일지 모른다.

예술은 우리가 던져야 하나
차마 던지지 못한 질문의 형식이다

‘퇴폐 예술’이라는 규정을 통해 바람직하지 못한 예술을 단죄했던 나치만큼이나 역사적으로 확고한 이데올로기를 갖고 미학적인 전장에 적극적으로 나선 또 다른 사례도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국가적 예술 이데올로기였던 소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그러했다. 2014년 한국을 찾은 바 있고 2025년 3월 13일에 타계한 소련(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Sofia Gubaidulina)는 영성의 주제를 통해 소련 당국의 억압적 예술 규정으로부터 끊임없이 창조적 탈주를 시도했던 음악가였다. 그 이전 세대 소련의 작곡가인 쇼스타코비치가 당국과의 알력 속에서 수행했던 초인적인 예술가적 작업 또한 이러한 선례에 해당하리라. 그러나 한 번 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억압적 전체주의와 싸우는 예술의 자유 같은 순진무구한 ‘자유민주주의적’ 테제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에게 헌정되어 그의 초연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구바이둘리나의 바이올린 협주곡 <오페르토리움(Offertorium)>(1980)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음악의 헌정(Musikalisches Opfer)>의 저 유명한 ‘왕의 주제(thema regium)’를 기반으로 작곡되었으나 현대적인 기법과 전통적인 조성이 종횡무진 교차하며 새로운 음향적 비경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오페르토리움’이라는 말 자체가 ‘헌정’이자 기독교적 영성의 ‘봉헌’을 의미한다. 그런데 구바이둘리나는 다소 기이한 말을 남기고 있다. 과거 억압적이었던 소련 전체주의의 예술적 강령이 횡행하던 시기에 비해 현재 작곡가들의 예술 상황은 더 자유로워졌음에도 그 ‘자유’가 과연 예술가들의 창조에 더 많이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는 억압 자체가 거꾸로 예술적 창조성의 원동력이 된다는 식의 부정적인 긍정 같은 것이 아니다. 가장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시기에 그 ‘자유’라는 환상 자체가 또 다른 억압의 기제이자 무기력의 알리바이는 아닌지, 이 작곡가는 가장 역설적이고도 예리하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여성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 사진. ⓒ피터 훈데르트/도이치 그라모폰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앨범 &lt;오페르토리움&gt;. / 사진. ⓒ도이치 그라모폰
예술은 국가를 적이자 동지,
곧 자신의 적대적 공범자로 삼는다

이 글은 물론 예술에 대한 글이다. 많은 이들은 글쓰기 자체도 예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예술을 ‘국가’라는, 일견 예술과 가장 동떨어진 곳에 놓여 있는 듯한 개념과 연결해 시작했다. 이는 예술과 국가라는 각각의 개별 영역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둘 사이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착종의 풍경을 말하려는 것. 예를 들어 나치는 소위 제3제국(Reich)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국가주의의 대표주자로 보인다. 그러나 이렇듯 대표적 국가주의로 여겨지는 나치의 미학­정치는, 역사학자 요한 샤푸토(Johann Chapoutot)가 잘 지적했듯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국가 자체의 소멸을 기도한다. 국가란 정치 제도와 법적 질서를 기본으로 하는 합의체이기에, 거꾸로 나치가 추구했던 독일적 민족공동체(Volksgemeinschaft)에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국가의 소멸, 어디에서 많이 듣던 이야기이다. 정확히 소련의 공식적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강령이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이상적인 목표로 삼았던 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바로 저 ‘국가의 소멸’이었다. 나치가 등장하면서 역사 속으로 몰락한 바이마르 민주공화국이 바로 나치가 소멸시키고자 했던 ‘국가’의 근대적 모습에 형식적으로 가장 부합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 국가의 소멸이란 또한 세계 공산주의의 모토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두 상반되는 체제가 공히 ‘국가의 소멸’이라는 이상을 추구했다는 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사에 밝지 못한 최근의 사람들은 마치 나치와 공산주의가 소위 ‘전체주의’라는 공통점으로 묶이는 인류 공통의 악이라고 쉽게 잘못 생각하는 단순한 무지를 노출하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치와 공산주의가 함께 공유했던 저 ‘국가의 소멸’이라는 이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이 점이 우리가 예술과 함께 던져야 하는 또 하나의 질문이 된다.

나치와 공산주의가 공통으로 원하던 저 ‘국가의 소멸’은 결국 성공하지 못한 계획이었나. 그들은 왜 국가 자체를 소멸해야 할 필요악으로 보았는가. 그러나 동시에, 왜 우리는 매번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라는 질문을 통해 여전히 강하게 국가의 존재를 요청하는가. 그때 저들이 원하지 않았고 지금 우리가 바라고 있는 저 ‘국가’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인가. 이는 단순히 정치의 질문이나 예술의 질문이 아니라 하나의 미학­정치적 질문이 된다.

(2부에 이어서)

람혼 최정우 미학자·음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