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전 부총리 "보수가 중도 겨냥할 카드는 '경제 성장'뿐" [한경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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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담론 놓친 보수, 재집권 위해 '다시 성장' 꺼내들어야"
과감한 신산업 투자, 금융 혁신 등 KOGA 필요한 때
尹 탄핵 보며 朴 전 대통령에 안타까운 심정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수는 애매하게 중도층을 잡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최 전 부총리는 보수 정부를 대표하는 경제 관료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 장관을, 박근혜 정부에서는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 부총리를 역임하며 2기 경제팀 수장을 맡았다. 그가 주도한 경제부양책인 '초이노믹스'는 당시 새누리당 선거 압승의 '1등 공신'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는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 옛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과 가진 오찬 회동에서 대권 도전을 권유 받았다. 이번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화두가 경제성장이 될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친박계 인사들의 정치적 소외를 타개할 적임자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그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국민의힘 본선 후보가 누가 든 간에 (보수) 재집권을 위한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고 밝혔다.
최 전 부총리는 작금의 보수의 위기의 이유를 '잃어버린 성장 담론'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더불어민주당에조차 뺏긴 상황"이라며 "보수, 진보가 아니라 자유와 시장의 우파, 평등과 정부 개입의 좌파로 구도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전 부총리는 한국경제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고 봤다. 그는 "향후 10년은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시간"이라며 "혁신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 등으로 KOGA(Korea Growth Again)를 이뤄내야 한다"고 했다.
최 전 부총리는 "'다시 성장'이라는 화두를 보수가 던져야 한다"며 "위기의 상황일수록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한 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장 촉진을 위한 다섯 개의 대포가 필요한 때"라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신산업 블루오션 개척 ▲역동 경제 조성을 위한 금융혁신 ▲노동시간 유연화 ▲창의적 인재 양성 ▲성장지원형 적극적 재정정책을 복안으로 제시했다.
다음은 최 전 부총리와의 일문일답.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중국 정부와의 관세 전쟁, 한국의 성장률 정체 등 경제위기에 대해 정치권 인사들과 쭉 만나면서 얘기했다. 그러니까 '이번 대선에서 경제 전문가가 안 보이니 당신이라도 나가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다 보니 과거 친박 인사들 중심으로 내 출마론이 나왔다. 나의 출마를 이야기하는 이유 중에는 경제에 대한 우려도 있겠지만, 현재 보수정당에서 친박 인사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번 대선에 출마 생각이 전혀 없다. 하지만 경제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하려고 한다. 본선 후보가 누가 되든 간에 할 역할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하겠다."
▶보수가 배출한 두 명의 대통령이 모두 탄핵당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을 보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가 생각났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컸다. 우리가 조금 더 보호했으면, 다르게 행동했으면 달라지지 않았겠느냐는 생각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할 만큼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국정 수행을 잘하고 있다 와 못하고 있다는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탄핵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과정에서 나를 포함한 박 전 대통령의 지지 세력들이 지금처럼 이슈 부각을 못 했다. 그때 탄핵을 주도했던 세력들은 아직도 반성한다는 말이 없다. 그래서 아쉽다."
▶'보수'가 아닌 새로운 프레임에 관해서 설명을 하자면.
"'보수'는 갈 길을 잃었다. 평소에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는 정치권은 보수와 진보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이 프레임의 문제는 진보는 좋고, 보수는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보수가 이미 지고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를 넘어 새 둥지를 마련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보수를 기반으로 집권했던 대통령들은 모두 끝이 좋지 않았다. '보수'라는 단어를 유지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우파와 좌파로 프레임을 바꾸면서, 중도 우파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세계적인 트렌드다. 우파는 자유와 시장을, 좌파는 평등과 큰 정부를 지향한다. 보수라는 개념은 자유와 시장의 가치를 포괄하지 못한다. 보수는 프랑스 혁명 당시 태동한 단어로, 사회를 급격하게 변화시키지 말고 안정감 있게 가져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보수라는 단어를 유지하면 앞으로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게 된다."
▶이번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보수가 반등할 기회가 있었나.
"탄핵소추안 가결 전후로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본다. 첫 번째는 계엄 이후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을 때다. 윤석열 정부가 과감한 결단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또 하나는 탄핵이 인용되고 나서다. 보수가 통렬한 반성을 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는 결단을 했으면 기회가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 모든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지나가 버렸다. 지금 대선 상황은 매우 어려운, 어정쩡한 소위 '딜레마'적인 상황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으로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권의 유력 후보들로 거론되는 인물 대부분이 만남을 요청했다고 들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쪽에서 요청이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에 만났다.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향후 10년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좌지우지되는 시기다. 그런데 보수는 성장 담론을 잃어버렸다. 더 이상 성장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어설프게 중도층에게 어필하려고 하는데, '경제 성장'만큼 좋은 중도층의 표심을 잡는 카드는 없다.
이들을 만나 '과감한 성장'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지금은 정치 싸움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누가 후보가 되든 간에 이번 선거에서는 경제 성장론에 불을 지피는 화두를 던져야 한다고 했다. 모두가 동의했다. 심지어 오 시장은 그때 자기 책 제목도 '다시 성장이다'라고 바꾼다고 이야기도 하더라."
▶국가 주도의 성장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도 많다.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 맞다. 하지만 미국 경제를 봐라. 예전에 학자들은 미국이 선진 국가이기 때문에 1~2%까지 밖에 성장을 못 한다고 얘기를 했다. 테크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미국은 매년 2~3%, 많게는 3~4%까지 성장하고 있다.
소극적인 생각을 가지고는 할 수 없다. 케인즈 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성장을 하기 위해선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생산성을 대폭 향상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투자를 과감하게 해야 한다. 좌파들이 얘기하는 분배 위주의 큰 정부가 아니라,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 경제 위기를 극복할 복안을 제시한다면.
"KOGA(Korea Growth Again)다. 다섯 가지로 구성이 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과 비슷하다. 첫째는 신산업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것이다. 국가 7대 핵심 산업을 선정하고, 이 산업에 있어서는 전방위적으로 규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리해야 할 산업들은 과감히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구조조정기금을 설치해 기존산업이 원활하게 구조조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금융 혁신이다. 현재 우리나라 은행들이 제일 잘하는 것은 부동산 대출이다. 금융회사가 모험자본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도록 하기 위해 금산분리를 철폐해야 한다.
셋째는 노동시장 유연화다. 경직적인 52시간제 철폐가 대표적이다. 신산업은 새로운 형태의 고용 구조를 요구하기 때문에 이와 걸맞은 유연한 고용제도가 필요하다.
넷째는 창의적인 인재 양성이다. 신산업을 추진하려면 그만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가 수혈되어야 한다. 대학들이 신산업 발전의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15년간 동결된 등록금을 올려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성장을 견인하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다. 재정건전성이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재정적자가 많아지면 안 좋다. 하지만 시장이 작동이 잘 안될 때나, 상황적으로 우리가 장기 침체 국면으로 간다면 수요 진작을 과감하게 하고,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물론 국가부채비율이 빠른 속도로 50%에 근접하고 있어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분모에 해당하는 성장이 전제되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