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머큐리의 전 연인, '세기의 로또녀' 오스틴으로 본 '관계의 미학'

[arte] 조원경의 책 경제 그리고 삶

불공평한 자본주의에서
인간관계로 이룬 뜻하지 않은 부(富)
영화
그룹 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잘 알려진 메리 오스틴을 생각해 본다. 메리 오스틴은 그룹 퀸의 멤버 프레디 머큐리를 떠나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다.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과 헤어진 메리 오스틴에게 약 290억 원에 이르는 저택과 112억 원이 넘는 재산을 남겼다. 자신이 사망한 후 발생하는 저작권 수입도 그녀에게 넘겼다. 실제로 메리 오스틴은 그의 재산을 받기를 거절하며 자선단체로 기부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머큐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네가 내 아내였을 것이고, 이것은 네 집이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머큐리는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받고 떠난다면서 ‘나를 모르시나요?’라면서 절규했다. 그들의 속사정을 상상해 보자. 사랑하던 여자는 남자의 성 정체성을 알고 당황한다. 그녀가 떠난 텅 빈 공간에서 세속에 찌든 많은 인간과 만나고 헤어진 머큐리. 화려한 조명 속에서 오히려 그의 외로움은 깊어만 갔다. 고독의 몸부림이 절정에 이른 어느 날, 사랑하는 여자는 꿈에서 그를 보았다며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에게 곁에 있어 달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이제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됐고 그의 아이를 가졌다.

비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헌신은 느껴지는 법. 둘은 서로에게 진정한 소울메이트로 남기로 했다. 머큐리의 연인 짐 허튼 역시 6년간 그의 파트너로 지냈다. 머큐리가 에이즈로 사망한 후 그 역시 세월이 흘러 에이즈로 사망한다. 머큐리는 그에게도 메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약간의 유산을 남겼다.

머큐리는 항상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아버지에게 반항했다. 밴드를 결성해 미니 밴을 팔아 앨범을 만들고 기획사의 눈에 들어 ‘퀸’이라는 그룹을 결성한다. 영화에서는 솔로로 헤어지기도 했지만, 그들은 다시 뭉쳐 아프리카 기아 관련 기부 프로그램의 대형 이벤트를 하며 그룹의 견고함을 보여줬다. 머큐리의 성공이 돋보이지만 그들 4명은 한 이름이고 수익 역시 균등해야 한다는 영화 대사가 마음을 울린다. 영화가 아닌 실제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의 소개로 머큐리와 오스틴은 각각 24살, 19살에 처음 만난다. 머큐리가 슈퍼스타가 되기 전이었지만, 메리는 그의 눈에서 엄청난 자신감을 느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순탄한 관계를 이어나갔다. 영화를 보면 머큐리는 만난 지 4년째가 되던 해에 메리에게 반지를 주며 청혼한다. 실제 메리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마스에 박스를 받았지요. 그 상자 안에 또 다른 작은 상자가 있었고 그 상자를 또 여니 작은 상자가 나왔고 마지막에는 반지가 나왔어요. 나는 결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이별했지만, 일반적으로 헤어진 연인들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서로를 평생 지지했다. 메리는 머큐리와의 사이에서 낳길 원했던 아이를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 얻었다. 아이와 고양이를 유달리 사랑했던 머큐리는 기꺼이 메리가 낳은 아이의 대부가 돼 주었다. 머큐리의 삶은 고단했지만, 그는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의 외침을 들어보자.

“난 내가 받아야 할 치욕과 설움을 겪었지만, 이렇게 버텨왔지. 우린 승리자잖아. 우린 마지막까지 싸울 거잖아. We are the champions. 그래 우리는 우리 인생의 승리자가 되어야 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 부를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 것이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메리의 따뜻한 공감 능력에 기초한 인간관계가 그녀에게 뜻하지 않은 부를 선사한 것이다.

미국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직장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에 실패한 사람들 1만 명을 대상으로 실패 원인을 연구했다. 연구 결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지식이 없어서 기술이 부족해서, 돈이 없어서, 혹은 능력이 없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문 기술과 지식이 없어서 실패한 사람은 15%에 불과했고 나머지 85%는 인간관계에서 실패한 것이었다.

우리가 만약 기쁨 없는 자본주의 경제에 살고 있다면 그건 일상에서 잊고 사는 것들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 아닐까. 신뢰와 우정, 정서적 인간관계에 기초한 경제시스템이 행복을 생산한다. 물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엿보자. 그는 경제적 불평등을 잘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증거로 보았다. “한 사람의 부자가 있으려면 최소한 500명의 가난한 사람이 있어야 하고, 소수의 풍요는 다수의 빈곤을 전제로 한다.” 그의 말처럼 자본주의는 가만히 두면 불공평해진다. 그의 말의 진정성은 케네디의 경제정책에서 엿볼 수 있다. 케네디는 미국의 경제성장으로 이루어낸 과실이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의 말을 새겨 보자.

“만약 자유사회가 가난한 다수를 돕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부유한 소수를 보호할 수 없다.”
케네디는 백악관에서 보낸 짧은 시간 동안 사회보장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고 최저임금도 올렸다. 케네디야말로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진보가 동행할 수 있다고 믿었던 세대의 희망의 상징이었고 부자와 빈자의 인간관계를 중시한 인물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 빌 게이츠의 명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으니, 그것에 익숙해져야 한다(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

인생은 정말 공평하지 않은 것일까.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는 집안 대대로 주물제조업을 하는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가우디는 자신의 천재성이 대대로 주물업을 한 집안의 혈통 속에 흐르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설계는 물론 대장장이 일을 직접 할 수 있었다. 주물제조 과정으로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공간 지각력을 갖고 있었다. 혹자는 그의 천재성이 탄생의 불공평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스페인의 기업가이자 정치가인 구엘 (Eusebi Güell)과의 인간관계가 없었다면 빛을 발휘할 수 없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구엘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스폰서였다. 구엘은 가우디와의 협업으로 구엘 공원을 비롯하여 몇몇 스페인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건설하고 혁신적이면서도 독창적인 건축 활동을 전개했다. 구엘은 카탈루냐 문화의 보호와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지역 사회의 복지와 교육을 위한 자선 활동을 펼친 인물이다. 인간의 눈으로 불공평해 보이는 사회에서도 인간관계로 공평함을 세운 인물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가우디가 설계한 구엘공원
인생의 공평과 불공평함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지만 어느 한쪽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불공평함을 공평함으로 바꾸는 비결은 자기계발서로 유명한 미국의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카네기의 지침은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대처하는 행동수칙, 어떤 집단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재가 되는 비결, 뛰어난 수완과 재치로 의사소통하는 유능한 리더가 되는 비결을 제시한다. 그의 책이야말로 부와 인간관계의 상관성을 말하는 명저가 아닐까. 상대방의 마음을 열고, 그 마음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인간관계가 부를 일군다면 과장일까. 그렇지 않다. 당신부터 마음을 열고 공감과 배려 능력을 키우자.

조원경 UNIST 교수